김주임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

By 2021년 09월 10일9월 20th, 2022작가 인터뷰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 김주임 작가 인터뷰

“지나고 보니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 준 건
그들과 함께 자연 속을 걷고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 표지 이미지 >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랫동안 해 온 작업들이 한 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출간된 책을 받아 드니 나무를 그리며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나무와 숲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멋진 나무를 발견하면 곁에 앉아서 시간을 잊은 채 나무를 그리곤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면서부터는 나무를 좀 더 의인화된 형태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그린 나무 그림들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반응이 좋았고 꼭 책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서 그려 놓았던 나무 그림들에 글을 붙여 보며 책 짓기를 시작했습니다.

 

 


<2007년에 그렸던 숲 그림>

 


<2017년 말에는 틈틈이 그렸던 나무 그림들 중 계절에 맞는 열두 장을 추려서 2018년도 달력을 제작해 펀딩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 열두 나무가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 책 짓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작은 방을 떠나기 전과 숲의 출구 앞에 서 있을 때 주인공의 몸과 마음은 달라져 있습니다. 이 책의 나무들이 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우울했던 시기에 산과 공원, 강과 호숫가를 친구나 가족과 함께 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친구와 함께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우울한 감정들도 잠깐씩은 멀어지곤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해 준 건 그들과 함께 자연 속을 걷고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나무들 또한 누군가에겐 어려운 계절을 함께 견뎌 내는 친구가 되어 주길 기대합니다.

 

 

마치 뼈대와 근육을 가진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나무들이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책 속 나무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게 되셨나요?
애니메이터로서 애니미즘(사물과 동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에 기반을 둔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움직임을 만드는 것에 늘 매료되어 있습니다. 때론 나무의 형태를 보면서 얼굴이나 표정을 상상하는 놀이를 즐기기도 합니다. 때문에 나무를 의인화된 캐릭터로 그리는 일은 취미이자 놀이에 가까웠습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서 그렸던 나무 그림들입니다.>

 


<애니메이션 「바람이 지나는 길」의 캐릭터들_주인공은 듀오백 의자였습니다.>

 

 

나무 캐릭터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나무가 있을까요?
‘나무로 만든 책’의 책 읽는 나무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가장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고 (무려 2014년도 그림) 연습장에 일필휘지로 그렸던 그림 그대로 책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나무’ 스케치입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마지막의 거대한 나무 산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오랫동안 그려온 나무 그림이 그 장면에서 정점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작 기간도 가장 길었습니다. 나무 끝판 왕과 겨루는 심정으로 몰입하여 그렸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표지입니다. 아무래도 책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보니 시안 작업도 가장 많이 했고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의 내지 이미지를 약간 수정해 보았는데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고 호기심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표지 시안들>

 

 

나무를 주인공으로 하거나 자연에 마음을 기대는 주제의 그림책이 많지만 이 책만이 가진 남다른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을 닮은 나무 캐릭터 아닐까요? 책 속의 나무들은 저마다의 얼굴로 개성 있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인 만큼 인격을 부여했을 때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책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숲의 정취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우울하고 힘들었던 감정들이 괜찮아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그 시기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런 감정을 겪었던 계절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 당시 제가 경험했던 계절의 느낌들을 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맞추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① 임신 7개월쯤에 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딸을 낳기 직전까지 숲을 그렸기 때문에 딸 이름은 자연스럽게 숲이 됐습니다. 책을 작업하는 동안 세 번의 여름이 지나갔고 숲이는 어느새 29개월이 됐네요. 문득 배 속의 태동을 느끼며 숲을 그리던 겨울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출산 10일 전_만삭 투혼 사진입니다.>

 

 

② 2020년 초에 개인적으로 작업하던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볼로냐국제도서전에 전시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영문판 더미북을 완성하자마자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됐고 그로 인해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서 도서전은 연기를 거듭하다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탈리아로 떠나지 못한 더미북이 아직도 택배 박스 안에 있네요,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요.

 

 


<개인적으로 제작했던 영문판 더미북 사진입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초기엔 가벼운 마음으로 A4 복사 용지나 연습장에 펜으로 낙서하듯 그렸습니다. 그러다 그림책을 목표로 한 이후부터는 켄트지에 과슈와 수채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점점 종이 욕심이 나서 후반부엔 전문가용 수채화지 아르쉬(세목)를 사용하게 되었고 수채 위주로 작업하게 됐습니다. 붓은 세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노동량이 많은 애니메이션 작업 틈틈이 나무 캐릭터를 그려야 했기 때문에 실패를 줄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형태나 색이 겹치지 않도록 종이를 나누어 수작업을 했고 종이별로 스캔을 받아서 다시 컴퓨터에서 작업했습니다. 덕분에 컴퓨터에서 수정을 하기가 쉬웠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아무래도 이전에 그려 두었던 열두 장의 나무 그림들을 모아 책 짓기를 하다 보니 개별적인 나무 이야기들보다도 각각의 이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열두 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최대 마흔여섯 장까지 늘어났습니다. 처음과 끝, 중간 사이사이에 계속 필요한 장면들과 글을 추가해 가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에게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일기장’입니다. 나무들과의 만남을 통해 주인공이 성장해 가는 기록인 동시에 저에게도 지난 몇 년간의 그림과 글이 담긴 일기장 같습니다.

 

 

독자들이 『나무 사이로 계절이 지나가』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친구처럼 곁에 두고 싶은 책이었으면 합니다. 책 속에서 나무와 주인공이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들이 독자들과도 상호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숲과 나무를 잔뜩 그린 책이 출간됐습니다. 집에만 있어 답답하고 우울한 사람들이 잠시나마 책을 통해 자연을 경험하고 책 속의 나무와 함께 힘든 시간들을 견뎌 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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