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물고기 하늘이』 김진원, 백혜영 작가 인터뷰
자신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다울 수 있는
‘관계’의 ‘연대’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지 이미지>
『로봇 물고기 하늘이』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김진원) 정말 기쁩니다. 책으로 따지면 두 번째 책이지만 글로 따지면 제가 처음 완성한 글이거든요. 이 글을 쓰면서 글쓰기라는 세계의 한 귀퉁이를 놀라우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탐험했어요. 그런 경험을 선사한 글이 멋지게 단장을 하고 세상에 나오니 더없이 기쁩니다.
(백혜영) 어른이 되고 동화책은 많이 접하지 않았어요. 원고를 받고 드디어 동화책과도 친해질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새로운 장르를 맞이하는 기분이 들며 반가웠어요. 김진원 작가님과 고래뱃속에게 따뜻한 글을 선물받은 느낌입니다.
『로봇 물고기 하늘이』는 우리나라 하천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기송사리를 쫓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물고기 ‘RF 1-9’가 하천에서 처음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양한 위기와 기쁨을 만나는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로봇 물고기’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진원) 경계를 살아가는 존재에 늘 마음이 끌립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로봇 물고기’는 물질(기계)과 자연의 경계를 살아갑니다. RF1-9가 그 경계를 겪어 가며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가 더 나은 자신을 향해 헤엄쳐 가는 길을 함께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로봇 물고기 하늘이』 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백혜영) 처음 읽을 때는 저도 한 명의 독자로서 그림에 대한 고민 없이 즐겁게 읽었어요. 물고기의 특징이 여전히 남아있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어요. ‘걸음’이란 말 대신 ‘꼬리지느러미야 날 살려라 도망쳤다.’ 같은 부분이요.
<아이디어 노트>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진원) 우선 뛰어난 물질문명을 이룩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 안에서 그 일부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기가 말라리아를 일으키자 인간은 그 애벌레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모기송사리를 풉니다. 그런데 오히려 모기송사리가 환경 유해종이 되어 버리죠. 그러자 이번에는 모기송사리를 없애기 위해 로봇 물고기를 만들어 풉니다. 악순환을 일으키는 이런 고리를 끊으려면 어떤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련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그 시련을 기회로 삼으면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온 힘을 끌어모아 꼬리지느러미를 옭아맨 가시 물풀을 끊어내고 마침내 풍경 물고기로 다시 태어난 RF 1-9처럼 말이죠. 우리에게는 모두 그렇게 변신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디어 스케치>
‘로봇으로 만들어진 물고기’를 그림으로 구상하는 데에 어떤 재미 혹은 어려움이 있으셨을지 궁금합니다. 구상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었나요?
(백혜영) 어릴 적, <곰돌이 푸>에서 보았던 ‘이요르’의 꼬리를 찾아 주는 장면이 생각났어요. 이요르에게 어떤 꼬리가 잘 어울릴지 이것저것 엉덩이에 붙여 보는 게임이었어요. 우산, 모자, 아코디언, 요요 등 여러 꼬리 중에 분홍 리본이 달린 압정 꼬리가 이요르에게 딱 맞았어요.
저도 로봇 물고기에게 딱 맞는 안테나, 지느러미, 꼬리 각각을 찾아 주느라 이것저것 조합했어요. 그렇게 ‘RF1-9’라는 로봇 생명체에게 가장 어울리는 몸을 선물했습니다. (꼬리를 골랐던 과정도 책 안에 있어요. 투표한 건 모두 저랍니다.)
연구원들에 의해 설계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로봇 물고기 하늘이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부모를 알지 못하는 인서. 두 인물은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을 모르는 채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건, 하늘이와 인서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은 곳에 공유하고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작가님의 삶에서 세상과 이어지는 끈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저마다 세상과 이어지는 고유한 끈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진원) 이 ‘끈’은 ‘관계’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고 ‘연대’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루는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고, 어쩌면 이어져 있는 만물이 세상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죠. 그 속에서 자신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다울 수 있는 ‘관계’의 ‘연대’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세상과 이어지는 끈은,…… 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나다워질 뿐만 아니라 글을 나누면서 가장 우리다워지는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아직 세상과 이어진 끈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김진원) 그 끈을 50년 만에 찾아낸 저로서는, 끈을 찾으려는 마음을 놓치지 말자고, 지금은 실망스럽더라도 천천히 나아가자는 말밖에는 할 게 없네요.
<채색 과정>
이야기 속에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자연물과 쇠붙이로 이루어진 인공물이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자연물과 인공물의 대비를 통해 담고 싶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김진원) 우리는 쉽게 자연물과 인공물을 구분 짓습니다. 서로 확연히 다르다고요. 물론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자연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릅니다. 같지 않아요. 쌍둥이 조차도요.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했으면 합니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사이좋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초기 스케치>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과 자연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물속 풍경들과 장면들을 매우 개성 넘치게 그려 주셨어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백혜영) 개성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송사리 떼의 모습이 어릴 적 먹던 과자 ‘석기시대’를 닮았다, 물고기가 쭈쭈바를 먹고 있는 것 같다, 동족상잔이 아니냐는 편집자분들과 디자인 실장님 말이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제 그림책 『내일』과 같은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여 모노톤으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로봇 물고기 하늘이』 글에 담긴 따뜻함이 저에게 스며들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모르게 색을 많이 썼더라고요.
<채색 작업>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김진원) 로봇 물고기 RF1-9가 물풀 숲에서 다른 로봇 물고기를 만나면서 자신이 누군지 깨닫는 장면입니다.
(백혜영) 표지 그림이요. 원래는 내지 그림으로 그렸는데 표지로도 어울려서 책의 얼굴이 되었네요. 뒷표지까지 펼쳐서 봐야 진짜 예쁘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첫 장에 나오는 그림도 좋아해요. 물고기가 가로지르는 것이 물인지 하늘인지 모호하게 보이면 좋겠어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김진원) 첫 장입니다. 로봇 물고기 RF1-9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과정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고민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실험실 연구보고서 형태로 썼어요. 로봇 물고기의 기능이나 역할, 실험 장소나 과정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딱딱할 듯하고 건성건성 뛰어 읽힐 수도 있어 고민 끝에 두 연구원이 로봇 물고기를 강에 풀어놓는 장면으로 바꾸었습니다.
(백혜영) 하늘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올챙이에게 하늘이가 상처받은 장면을 잘 표현하고 싶어 여러 가지로 그려 보았어요. 그리고 이 그림을 선택했어요.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찢긴 몸과 마음의 상처가 끊긴 물풀의 구도를 통해 잘 드러난 것 같아요.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김진원) 올챙이입니다. 가장 나를 닮아서?
<채색 작업>
이야기 속에서 특히 공감하며 상상하고 그린 캐릭터가 있으세요?
(백혜영) 풍경이 된 하늘이요. 이런 전개는 상상도 못 해서 눈을 반짝이며 읽었어요. 여전히 로봇 물고기라는 점은 같지만, 내면의 변화를 겪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걸 느끼는 하늘이는 처음의 하늘이와는 다른 새로운 캐릭터라고 느껴졌어요. 이름도 생겼고요. 특히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누군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풍경이 된 자신을 즐기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에 공감하며 새로이 태어난 캐릭터를 그렸습니다.
‘정해진 대로‘라는 틀을 깨고 스스로 관계를 빚어 가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 가는 하늘이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혹시 작가님께도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길 위에서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려 본 경험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주세요.
(김진원) 살다 보면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때가 찾아옵니다. ‘나’를 잃어버린 채 ‘너’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때가 말이죠. 그런데 제가 읽은 책에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너’의 잣대로 보면 삐딱한 길을 선택하며 ‘나’다운 길을 찾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한 뼘 성장을 일구어내죠.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삶’도 삶입니다. 나다울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삶’이 나다울 수 없다면, 그래서 또다시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길로 걸어갈 것입니다. 삐딱하게 보일지라도요.
저마다 삶의 방식과 모양은 셀 수 없이 다양할 테지만,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가 삶에 대해 가져야 할 시선과 태도는 무엇일까요?
(김진원)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갇히지 않는 것.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김진원) 로봇 물고기 RF1-9가 자신을 믿고 마지막까지 힘을 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성장’과 ‘변신’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점입니다.
<작업 과정>
『로봇 물고기 하늘이』의 그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이스터에그’(Easter Egg)로 숨겨 두어 독자가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 요소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어떤 그림 방식이나 캐릭터를 구상 중이신가요?
(백혜영) 저의 다른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를 그림에서 찾아내셨나요? 숨은그림찾기처럼 책에서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싶었어요. 이전까지의 작품에선 저와 주변 분들을 투영해 의인화한 다른 생명체를 그렸었다면, 다음 차기작에선 진짜 저와, 제 주변 분들을 닮은 ‘사람’ 캐릭터를 등장시키려 준비하고 있어요. 누가 봐도 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요. 우리가 모두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김진원) 번역 작업을 해나가면서 『로봇 물고기 하늘이』 세부 얼개를 짰습니다. 그래서 ‘하루 1시간 꼭 『로봇 물고기 하늘이』 생각하기’ 규칙을 정해 놓았어요. 그렇게 한 날에는 일정표에 동그라미를 그렸고요. 동그라미를 그릴 때마다 뿌듯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백혜영) 『로봇 물고기 하늘이』를 그리기 시작한 건,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야 했던 다른 책의 삽화 작업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그래서 작업 초반에는 사실적으로 그리던 지난 몇 달간의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어요. 고래뱃속에서 ‘그림이 매력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셔서 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이전 작품에서 빠져나와 하늘이에게 올 수 있었답니다.
<채색 작업>
“나에게 『로봇 물고기 하늘이』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김진원) ‘(또 하나의) 세계이자 길’이다. 존재마다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있으니까요. 책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로봇 물고기 하늘이』도 『로봇 물고기 하늘이』만의 세계를 품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세계는 분명 다른 세계로도 이어질 테니 길이기도 하겠지요.
(백혜영) ‘피노키오’다. 나무 인형이 고래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진짜 사람이 된 것처럼, 그저 로봇이었던 물고기는 고래뱃속을 거쳐 이제는 저에게 의미 있는 진짜 물고기가 되었어요.
독자들이 『로봇 물고기 하늘이』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진원) 로봇 물고기 RF1-9처럼 ‘나’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변신’해야 할 시간을 힘들게 마주하고 있다면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내면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 힘을 찾을 수 없다면 기르면 된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