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신수지, 이재경 작가 인터뷰
‘스스로 크게 하는 사랑’,
‘나아가는 용기’의 매개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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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신수지) 배 속에서 열 달 배고 있다가 세상에 아이를 갓 내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스스로』가 생명체처럼 정말 스스로 돌아다닐 것 같은 상상도 됩니다. 옹알이도 생략하고 벌써부터 돌아다닐 생각부터 하는 철부지 부모 같은 마음인 거 같습니다.
(이재경) 책이 출간될 때마다 뿌듯하고 반가워요. 아쉬운 부분도 조금 있지만요.
이 책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스스로’ 많은 것을 하게 되는 성장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제에 주목하게 된 이유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신수지) 결혼 전 어린이와 가깝게 지내는 일을 하며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키워야지! 지켜봐 줘야지!’라고 양육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낳아 키워 보니 양육 가치관과 반대되는 행동을 스스로 하고 있더라고요. 참 어렵고 막막하였습니다. 아이 스스로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제 모습과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섬뜩하게 든 생각을 잊고 싶지 않아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양육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저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이와 양육자 모두를 응원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고 싶어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넌지시 제 아이하고도요.
이야기 도입부, 아이가 엄마에 의해 인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가요?
(이재경)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라는 텍스트를 보고 ‘아이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 혹시 엄마가 모든 것을 해 주지는 않을까? 엄마는 아이를 자신의 생각에 맞추려 하지 않을까? 결국 엄마가 원하는 아이는 자신의 틀에 맞춰진 아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들에서 인형 만드는 장면이 나오게 됐어요.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신수지) 요즘 ‘스스로’라는 단어는 어찌 보면 스스로 하고 있지 않을 때 더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스로 학습법’ 같이 결국은 학습을 독려하는 것이지 보편적으로 대다수가 하는 방법은 아닐 거 같다고요. 스스로에 대한 사회적인 부담감은 차치하고 스스로 즐거움, 괴로움 등은 제대로 느끼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인간으로서 주체성은 가졌으면 좋겠다고요. 나 자신에 대해, 나 자신으로부터 생겨난 생명, 상황에 대해서도 어디까지가 나의 선인지를 주체적으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와 양육자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하는 신남을! 나아가는 주체적인 삶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대신 엄마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자, 아이는 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설정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수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에 의거해서요. 하하핫.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
아이가 공에서 점차 다시 한 인간으로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전개 과정이 중요하게 그려지는데요. 장면 구상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재경) 아무것도 하지 않던 아이가 놀이터 그네 장면에서 절정을 맞아요. 그네를 타던 아이가 공에 부딪히고 자신도 공이 돼 버려요. 그때부터 공처럼 이곳저곳을 굴러다녀요. 돌에 부딪히고 덤불숲에 갇히고 배도 고프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죠. 그런 흐름을 공이 굴러가듯 자연스럽게 표현해 봤어요.
이야기 속에서 아이가 공이 되고 난 후 마주하게 되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과,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결시킨다면, 어떤 일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신수지) 돌부리, 덤불숲 등은 실제입니다. 우선 제 책상만 봐도 덤불숲입니다. 헤쳐 봐야 합니다. 하하핫.
질문에 진지하게 일례를 들어 답하자면 사회 초년생일 때 사업 예산은 작은데 성과는 내야 해서 ‘이걸 어쩌지?’라고 고민만 했었습니다. 선배가 하는 것을 지켜볼 때도 있었고, 하라는 것만 소극적으로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신이 나지 않더라고요. 나름대로 문제를 적고 끄적이며 방법을 찾아나가기 시작했고 작은 성공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돌부리, 덤불숲을 지나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고 있어요. 나아가는 용기, 또 넘어질 수 있다는 이해(경험)가 있어서 은근슬쩍 공이 되어 굴러가다가 살짝 가속이 붙었다가 뭔가에 부딪혔다가 다시 손과 발을 뻗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게 인생이니까요.
그리고 분명 스스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아니게 되는 시점에서 다시 스스로 해야 하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도요.
<초기 채색>
이후에도 아이는 ‘길’ 위에서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고 스스로 감각들을 깨우며 성장해 갑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심 바탕을 ‘길’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신수지) 육아든 뭐든 삶의 이슈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고 넓어졌다가 좁아지고 갈래갈래 흩어졌다가 다시 모입니다. 다채로운 경험을 점이 아닌 선으로 연결하니 자연스럽게 길이 떠올랐어요. ‘스스로’의 ‘로’도 사실 길노입니다. 하하핫. ‘길’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어린이와 양육자 간의 마음 여정을 담은 ‘마음길 시리즈’를 기획했고 차근히 펴내고 싶어요. 아이와 동행하며 겪은 다양한 감정 변화가 담긴 ‘때때로’, ‘그대로’, ‘이대로’ 등 ‘마음길 시리즈’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과 휴게소에서 만나 편히 마음을 나누면 좋겠고-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나 또는 아이 마음으로 향해가는 지름길이 되거나, 누군가에게는 함께 걸어가는 안전한 보행길이 될 수 있도록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이재경) 주로 색연필 작업이에요. 유성 색연필과 수성 색연필을 사용해요. 수성 색연필의 자유분방함을 유성 색연필로 잡아줘요.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신수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하나만 꼽기는 어렵네요… 으음. ‘엄마에게 달려가 꼭 껴안고 입 맞출 수 있어요.’ 장면이요. 왜냐하면- 아이와 엄마의 손과 팔, 발과 다리, 눈과 귀, 마음과 생각까지 총동원되어야 가능한 장면이니까요.
(이재경) 첫 장면이요. 첫 장면이 금방 떠오르면 그림이 잘 풀리는 경향이 있는데 첫 장면이 바로 떠올라서 뒷장면까지 잘 이어졌던 것 같아요.
<초기 채색>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신수지) 점점 공이 되는 장면이요. 제 머릿속 구상을 여러 사람이 그림책 앞장과 연결하여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싶어서 고민이 되었어요.
(이재경) 책 내용이 아이의 모습이 하나둘 사라졌다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그림에서 눈도 코도 신체 여러 부분이 사라졌다 다시 생겨야 했어요. 그 과정을 그림으로 재미있게, 이상하지 않게 표현하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그중에서도 먹으려고 코와 입을 꺼내는 장면이요.
스스로 성장한 아이는 책의 마지막에 엄마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옵니다. 이 장면에 특별히 싣고 싶었던 의미가 있으신가요?
(신수지) 엄마의 마음속에 아이에 대한 대견함이, 아이의 마음속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그려지길 원했고, 그들 사이에 이전보다 더 따뜻한 사랑이 가득 채워지기를 바랐습니다.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를 향한 길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길을 떠나는 아이와 엄마에게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수지) 여유요. 기다릴 수 있는 정신적 여유, 시간적 여유요. 그리고 용기요. 스스로 해보겠다는 도전적 용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용기요.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신수지) 이 책을 기획하는 초기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누구나, 언제나 어렵지 않게 보아야 한다.’였습니다. 어린이가 보아도 느낄 수 있고, 어른이 보아도 느낄 수 있으며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조금씩 달라져서 가깝게 두고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작업을 하면서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로 구체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재경) 엄마는 아이를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하기 쉬워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게 어렵지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기 채색>
그림 속에 아기자기하게 가득 차 있는 요소들이 인상적입니다. 혹시, 이런 것도 눈여겨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독자들에게 살짝 귀띔해 주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이재경) 아이와 긴 여정을 함께한 공을 각 장면에서 찾아 보세요.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신수지) 아이에게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줄기를 만들고 글을 적고 있을 때 아이에게 “새가 어떻게 울지?”라고 물었더니 “엄마, 들어 봐. 새는 휘휘호오하고 노래 부르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짹짹짹’, ‘구구구’, ‘까아악’ 보다는 확실히 친구가 되고 싶은 소리였습니다. 하하핫.
그리고 책을 만드는 막바지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이가 “엄마! 이건 나 아니지?”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그러지 않아? 지금도…”라고 대답하는데 아이가 손으로 제 입을 막더라고요. 곧장 자기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갖다 두고 자기 할 일을 하더라고요. 딱 한 번이긴 했지만요.
(이재경) 비교적 술술 잘 풀려서 무난하게 작업했던 것이 에피소드 아닌 에피소드예요.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
“나에게 『스스로』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신수지) ‘실험’입니다. 결과야 어떻든 ‘실제로 해 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로운 방법이나 형식을 사용해 보면서 더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크게 될 거 같아서요.
처음 글을 쓴 그림책 『스스로』는 제게도 실험이었습니다. 가능할까 싶었던…
(이재경) ‘포옹’입니다. 엄마는 혼자 해낸 아이에 대한 대견함으로, 아이는 혼자 해내도록 기다려 준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뜨겁게 포옹을 하지 않았을까요? 새 책을 내놓고 독자들의 따뜻한 격려의 포옹을 기다려 봅니다.
독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수지) 『스스로』를 즐겁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때때로 아이와 함께 ‘우리는 지금 어느쯤에 있나?’를 짚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스스로』 책이 아이와 양육자 간에 ‘스스로 크게 하는 사랑, 나아가는 용기’의 매개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