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 경자 작가 인터뷰
그 더듬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표지 이미지>
『잠자』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후련하고 부끄럽고 좋아요.
『잠자』는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지닌 주인공 ‘잠자’가 사회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책입니다.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한때 제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다고 느꼈을 때 이 이야기를 구상했던 것 같아요.
<초기 스케치>
주인공 잠자를 벌레란 파격적인(?) 캐릭터로 설정하게 된 배경도 궁금합니다. 캐릭터를 구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나 작업 과정이 있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재밌게 읽었어요. 그 책에서는 집안의 가장인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요.
그래서 저도 크게 고민 안 하고 벌레를 그렸어요. 또 사람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혐오스러워야 하고… 그것은 바퀴벌레였어요.
<장면 구상 아이디어>
한집에서 벌어지는 잠자와 가족들 사이의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큰 골칫거리인 잠자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요. 이러한 가족들의 행동을 통해 작가님이 담으려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알게 모르게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게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학교 다닐 땐 밝고 명랑하며 교우 관계가 좋아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지향하면서 다들 그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해요.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 사람이 돼요. 잠자는 이 사회에서 추구하는 타입이 아니니까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해요. 가족들은 넓게 보면 사회를 뜻해요. 가족들이 한 행동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진심으로 잠자를 위해서 한 일이에요.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잠자를 위한 일이었을지는…… 저는 가족의 행동으로 개인의 특성이 말살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더듬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인생 안에서 원하는 대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고집.
개인의 삶의 방향성과 특성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초기 스케치>
그러던 어느 날, 무언가를 잃어버린 잠자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그리곤 남들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지요.
이러한 결말에 담고 싶으셨던 의미가 궁금합니다.
바퀴벌레였을 적 잠자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후 잠자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 아래로 하강하지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통해 잠자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잠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프란츠 카프카의 중편 소설 『변신』에서 모티프를 얻어 탄생했는데요. 고전 소설 원작 속 소재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변신』에서처럼 가족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느낌을 살리면서도 『잠자』다움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신경 쓴 만큼 전달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초기 스케치>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잠자가 신나서 붓으로 기타를 치는 그림이 있는 장면입니다.
잠자가 제일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장면이라서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색연필과 연필을 이용했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포토샵으로 살짝….
책을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비록 미완성된 그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
실패한 삶도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큰 영감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요. 미완성으로 아쉬움이 남아도 이어 나갈 수밖에 없고
이어 나가야만 하는 삶의 영속성을 표현하였습니다.
<초기 스케치>
잠자처럼 작가님께서도 사회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있으셨나요?
잠자가 지하철을 타러 뛰어가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저도 분명하게 감지되는 것은 없지만 뭔가 뒤통수가 싸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뭘 잃어버렸는지. 그렇지만 분명 뭔가를 잃어버렸겠지요. 그동안 그 반대편에서 뭔가를 항상 취하고 살았으니까요.
<초기 채색 작업>
전작 『누군가 뱉은』과 『거대얼굴』에 이어 또 하나의 고유하고도 묵직한 이야기 세계가 탄생했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아기를 낳고 나니까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말랑말랑한 세계를 그려 보고 싶어졌어요.
다양하게 해 보고 싶어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주변 사람들의 날 선 편견과 차별의 시선과 말들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무수한 잠자들에게 작가님께서 전하고 싶은 말이나 응원, 조언 부탁드려요.
다르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꿋꿋해지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장면 구상 아이디어>
“나에게 『잠자』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잠자는… 내… ‘에세이’다? ㅋㅋㅋ
독자들이 『잠자』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잠자』를 읽고 자신의 더듬이는 어딜 가리키고 있는지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고,
그 더듬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달라도 타인을 다정한 시선으로 보고 존중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