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정말 멋진 날이야

By 2019년 04월 05일8월 17th, 2021작가 인터뷰

<정말 멋진 날이야> 김혜원 작가 인터뷰

“반려동물을 아끼고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시우와 파란 개의 영혼, 어느 갈색 강아지의 이야기!
숨겨진 슬픔을 담담히 담아낸 『정말 멋진 날이야』를 쓰고 그린 김혜원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 표지 이미지

 

『정말 멋진 날이야』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기 북극곰의 외출』을 기획했던 2011년 그때 같이 떠올렸던 이야기예요. 러프 스케치 더미를 만들어 놓고서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5년이 지난 2016년 여름에 다시 더미를 다듬어서 완성할 수 있었어요. 소소한 이야기인데 고래뱃속 출판사분들께서 관심 있게 봐주셔서 이렇게 세상에 소개될 수 있었어요.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보고 거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찾는 편이에요. 어느 날 우연히 그림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한 아이가 길을 걷고 있고, 그 곁에 강아지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서 아이를 바라보는 장면이었어요.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아이와 강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간단하게 몇 장면을 그려 보았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저는 또래들만큼 키도 크지 못했고 말도 느렸어요. 기본적으로 외로운 성향의 아이였지요.
숫기가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라서 친구 사귀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어렵게 친구가 되면 또 이사해서 헤어지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게 싫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서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빈 학교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리고 저는 작은 동물이 좋았어요. 작고 따뜻하고 연약한 동물을 통해 어떤 동질감을 느꼈는지 그들을 돌보는 게 좋았어요. 복슬복슬 강아지, 포슬포슬 아기 토끼, 솜 병아리, 옆집의 아기 고양이. 그런데 방법을 잘 몰라서 부주의하게 떠나보내게 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사고로 떠나는 아가들도 있었고요. 오래오래 지켜주지는 못했어요. 작은 동물들이 세상을 떠날 때면 저는 그 아이들을 공터에 묻어주었어요. 그리고 그 위에 풀이나 꽃을 꽂아주곤 했어요.
예전에 저와 함께 살던 ‘슬기’라는 이름의 멋진 하얀 개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동물복지라는 개념이 약했던 때라서 지금처럼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동물을 기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집 계단 아래에 슬기 집이 있었는데 평생을 묶여서 살았던 슬기는 우리 가족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며 살았어요. 누구라도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좋아하며 잘 따르는 착하고 순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어딘가로 팔려 가는 일에 ‘그때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지금 생각을 하면 마음이 매우 아파요. 산책도 거의 시키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슬기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이 이야기를 만들면서 슬기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런 기억들이 이 책을 만들게 된 동기라면 동기입니다.

​▲ 스케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요?
반려동물을 아끼고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와 함께 여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섬세한 감정 안에도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다움이 싹튼다는 것도 담고 싶었어요. 위에서 구구절절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는데요. 내 삶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이 내 영혼에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작업에 묻어나게 되는데 정리해서 말하기가 어렵네요.

▲ 더미 북

 

작업 과정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업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나 어려웠던 점, 즐거웠던 점 등을 이야기해 주세요.
2016년 6월 초여름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작업했어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했어요. 하지만 작업을 하는 그 과정이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열정적이었고, 더미로 완성을 했을 때는 정말 뿌듯했어요.
그런데 해가 지나서 이 더미를 출간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어요. ‘이대로 책이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더해만 갔고 즐겁게 그렸던 그림에도 자신이 없어졌어요. 원화를 새로 작업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예전 같은 기분으로 그릴 수가 없었어요.
출판사분들께 못하겠다고 투정만 엄청 부리다가 결국에는 거의 처음 그림들로 엮어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만족하고 있는데 저만 그런 걸까요?

​▲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혹은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을까요?
놀이터 의자에 시우랑 파란 개가 등을 보이며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을 좋아해요. 저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뒷모습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둘이서 강아지의 발랄한 행동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파란 개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을 이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요?
파란 개를 떠나보내는 장면이요. ‘어떻게 잘 떠나보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원래는 이야기 중간에 파란 개가 불현듯 사라지는 설정이었어요. 그러다가 그림책을 만들어 가면서 거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파란 개가 시우의 곁에 있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바꿨어요. 또 다른 고민은 책이 너무 심심한 것 같아서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가 참 심심한 사람이라서….

▲ 재료 연구

▲ 채색 연구

 

어떤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정말 멋진 날이야』는 수채화와 먹, 연필과 색연필을 담채로 사용해서 작업했어요. 기존에는 건식 재료로 꽉 채우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몇 년 전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을 정리하면서 여행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 보았어요. 수채화와 먹을 사용해서 색을 제한하며 가볍게 풀어 보았는데 불규칙적으로 물감이 번지는 그 느낌이 퍽 좋았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도 그렇게 풀어보려고 했죠. 실제 작업에 들어갔을 때는 그림이 습작할 때만큼 불규칙으로 마무리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림을 기본적으로 다듬고 정리하는 성향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연필과 색연필로 조금씩 다듬었던 것 같아요.

 

▲ 등장인물 연구

▲ 배경 연구

 

『정말 멋진 날이야』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장면들에 등장하는 배경 연출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요.
단발머리의 남자아이는 제가 어린 시절에 주로 했던 머리 모양이에요. 그때는 길게 묶고 따거나 하기보다는 주로 뱅 스타일의 단발머리를 많이 했어요. 저희가 4남매인데 사진을 보면 모두 다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요.
시우는 지인의 아이 이름이 ‘지우’였는데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부르기가 쉬워서 좋았어요. 친조카가 조금 서운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파란 개는 슬기를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슬기는 잘생긴 진돗개 믹스 종이었죠. 시우와 강아지가 다니는 배경은 서울을 그렸어요. 유람선이 떠다니는 한강과 여의도 쪽으로 바라본 풍경이고, 높은 곳에서 비행기를 보는 장면은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남산 풍경을 생각해서 작업했어요. 평소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예전 스케치에서는 둘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는데 그 장면은 빠지게 되었어요. 그냥 아이가 다니는 길을 따라 상상해 봤는데 자연스럽게 그려진 스케치에 맞춰서 장면을 구성해 덧붙여 그렸어요. 굉장한 의미가 있고 그렇지는 않아요.
만일 저의 어린 시절과 연결 지었다면 배경은 바다나 들이 되었을 거예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살았었는데 등하굣길에 해변 모래사장에서 한참씩 놀았어요. 공터나 빈 운동장, 들판이나 언덕도 제가 주로 갔던 곳이어서 배경 연출에 참고했을 거예요.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전체적인 그림 분위기와 느낌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거였어요. 또 파란 개의 존재감과 그에 대한 설득력이었어요. 제가 의도했던 느낌은 차분함 속의 발랄함, 슬프지만 아름다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파란 개의 마음이 독자에게도 잘 전달되기를 바랐어요.

 

지난 작품 『아기 북극곰의 외출』과 『고양이』, 『정말 멋진 날이야』까지 동물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데요.(마치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동물이 등장하지만, 사람도 등장하고 있어요. 첫 책 『아기 북극곰의 외출』에서의 여자아이, 『정말 멋진 날이야』에서의 시우, 『고양이』의 경우에는 그 고양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책 바깥에 있고요. 그들(동물과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마음은 한 가지인데 사람이 반려동물을 대하는 마음은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따뜻한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안타깝기도 하고요. 어떤 측은지심이나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선한 마음.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며 살고 싶어요.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외로운 존재가 다른 외로운 존재를 만나서 서로 의지하고, 돌아보고 돌보다가 마지막에는 서로의 작은 추억들을 기억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동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커서 동물 이야기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과 인간에 의해 잔인하게 이용당하는 현실에 안타깝고 미안함을 느껴요. 세상의 모든 것에 인간의 프레임을 씌워서 의미부여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져요. 인간은 얼마나 더 많이 갖고 얼마나 더 편하게 살아야 만족할까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요? 도덕적인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 또한 지금까지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왔는데, 이제야 조금씩 윤리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간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가 속한 자연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윤리적인 삶. 공부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린 시절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몸의 감각으로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직 떠오르지 않아요. 위에서 얘기했던 나의 배경지가 그림의 배경이 될 것 같아요. 아직도 제 안으로만 파고드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결국엔 이걸 먼저 해결해야만 밖으로 향하는 이야기도 만들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어요.

 

​“나에게 『정말 멋진 날이야』는 ( )이다.” 빈 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징검다리의 두 번째 돌”

▲ 함께 사는 고양이

 

독자들이 『정말 멋진 날이야』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말 멋진 날이야』를 보면서 시우의 모습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대입해 보시면 좋겠어요.
떠나보내야 했던 소중한 존재에 대한 기억과 지금 내가 지켜주고 싶은 존재는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이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가 많이 아파서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떠나보낼 것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슬프기도 하지만 또 한편 받아들이게도 돼요. 모든 것에는 순리가 있으니까요. 우리 사는 동안 동물은 동물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행동하고 사유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이 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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