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가시

By 2022년 11월 30일작가 인터뷰

『가시』 이승희 작가 인터뷰

내 안의 ‘꽃’을 믿고 타인의 ‘꽃’도 귀하게 여기며

서로 연대해야만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표지 이미지>

 

 『가시』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업을 하는 동안 작업 자체뿐 아니라 작업 외적으로도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작업했던 이야기가 책으로 완성되어 기쁘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 나오게 되니 사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입니다.

 

 

<그림체 연구와 스토리보드>

 

 

제목과 표지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가시’가 이 책 속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욕설이나 폭언, 폭행 등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곧잘 인식하고 경계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곧잘 쓰는 말들이 상대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합니다. ‘가시’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빠진,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성을 가진 말들을 의미합니다.

 

가벼운 말이 가질 수 있는 무거운 힘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가까운 사람들의 어떤 말들이 가시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들에 저는 자주 상처받았고 불편한 감정을 참다못해 저 역시 날카로운 말들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제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저 때문에 아파했던 사람들에 대한 반성과 위로의 마음도 담고 싶어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사람들의 말에 그토록 상처받았던 것은 제 감정과 생각을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믿음보다 타인을 향한 인정 욕구가 더 강하면 결국 내 삶은 타인의 평가에 끌려다니며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의 가시 돋친 말을 피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내 자신이 존재 자체로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제가 겪어보니 이건 정말 진실입니다. 그래야 상처 입은 마음을 안고서도 꿋꿋이 세상을 마주하고 버텨 낼 용기가 생깁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존중과 배려가 빠진 타인의 말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목소리, 자신을 향한 무한한 믿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판화와 동판>

 

 

이 책 속에는 소녀와 소년이 등장합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더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들인데요.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소녀는 제 자신과 거의 동일한 인물입니다. 소년은 ‘상처받은 치유자’로 소녀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시나무숲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인물입니다. 제 자신을 좀 더 믿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많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줬던 심리상담사님과 오래된 벗, 그리고 심리학 관련 영상과 책 등이 소년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초기 캐릭터 구상>

 

<테스트 프린팅>

 

 

두 인물의 이야기만큼이나 마음 깊이 다가오는 것은 바로 섬세한 선들로 하나하나 구현된 ‘가시’의 이미지입니다. 장면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하는데요,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작인 『미미와 나』처럼 부식방지액을 바른 동판 위에 니들로 이미지를 긁어내고 부식시킨 후 프레스기로 찍어내는 동판화(에칭)를 기본으로 하고 드라이포인트, 사포를 이용한 애쿼틴트기법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가시』는 모노프린트로 작업한 장면도 많습니다. 모노프린트는 에칭된 판에 가필을 하거나, 특별한 잉킹방식 또는 회화적 방법을 통해 완성시키는 방법을 말합니다. 부식된 선 이외의 여백에 다양한 형태로 잉크를 남겨 조금씩 다른 이미지가 찍히도록 여러 번 테스트 프린팅을 했습니다. 그중 가장 잘 표현된 판화를 골라 책을 완성했습니다.

 

가시와 더불어 ‘꽃’도 역시 이야기의 전개상 중요한 상징이 되어 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각 장면에서 꽃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 안에 있는 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말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자아존중감이 떨어지면서 자신을 부정적이고 낮게 평가하기 쉬워집니다. 가시가 점점 자라나 소녀를 삼켜 버리고 숨통을 조이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더 큰 절망 속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꽃’이란 그런 고통 속에서 잊혀져 버린 나의 본질 즉, 내가 느끼는 감정, 나의 고유한 장점과 무한한 가능성, 자신에 대한 믿음 등을 의미합니다. 내 안의 ‘꽃’을 항상 기억하고 믿어야만 나를 함부로 대하는 타인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테스트 프린팅>

 

<참고 자료>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혹은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을까요?
가시덤불 속을 가로지르는 빛줄기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 장면에서 가장 ‘희망’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 빛줄기 끝에 꽃망울이 솟아올라 있는 장면도 좋아합니다. 제 안의 꽃망울을 생각하며 때때로 낮아지는 자존감을 끌어올리려 노력합니다.

 

<잉킹한 동판>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모든 장면들이 다 쉽지 않았지만, 소녀에게 가시가 되는 사람들의 말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특히 고민되었습니다. 우선 심리학 관련 영상이나 책을 참고해서 근거를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성을 가진 말들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 말들이 여러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평범한 말처럼 느껴지도록 각기 다른 필체로 과하지 않게 표현했습니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표현해서 바로 뒷장, 소녀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그 말들의 날카롭고 무서운 느낌과의 대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풍경처럼 내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나요?
마지막 장면 전까지는 소녀는 일방적인 피해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 상처를 주기도 했던 것처럼, 이야기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녀도 누군가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세상은 상처투성이이기에 내 안의 ‘꽃’을 믿고 타인의 ‘꽃’도 귀하게 여기며 서로 연대해야만 고통스러운 이 삶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면-밑그림>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작업 중의 에피소드는 아니고··· 예전에 커다란 가시가 사람의 발을 뚫고 지나가는 그림을 그린 적 있습니다. 고래뱃속 대표님이 제 인스타그램에서 그 그림을 우연히 보셨고 이야기로 만들면 괜찮겠다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이 그 그림을 보지 못하셨다면 아마 『가시』 작업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정서적 폭력은 그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체적 폭력보다 더욱 장기적이고 어쩌면 더욱 심각한 손상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실제로 제가 느꼈던 고통과 공포였기에 그 감정을 최대한 생생히 표현해내서 독자들에게 언어에 의한 정서적 폭력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가시』의 모티브가 된 드로잉>

 

 

작가님에게 그림책, 그리고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어쩌면 제 인생은 『가시』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가시』 작업은 물론 작업하면서 받았던 심리 상담, 심리학 관련 영상들과 독서 덕분에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시』는 삶이 힘들 때 위로받으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제 스스로를 위한 선물 같은 그림책입니다. 앞으로도 제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나에게 『가시』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내면의 치유와 성장’입니다.

 

<잉킹대와 프레스기>

 

 

독자들이 『가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나 편한 사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건네는 말들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나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꽃’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인이 함부로 규정해놓은 틀 안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를 믿으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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