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사진관> 이시원 작가 인터뷰
“안아 주고 싶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 표지 이미지
얼마 전 이시원 작가님의 『숲 속 사진관』이 출간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첫 작품이라 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작가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마치 k팝스타 오디션에 나가서 노래를 끝내고 심사평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정말 홀가분하지만, 저를 그림책으로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꿈에 그리던 그림책 작가가 된 것이 행복하면서도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요. 이제는 조금 무덤덤해지려 노력하고 있고, 차분히 다음 책을 구상하려고 해요.”
직장 생활을 하시다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를 여쭤보았습니다.
그림으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방송 예고 등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일이 행복하지 않았고, 5년 후,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음에 품고만 있었던 그림책 작가의 꿈을 들여다보았어요. 그림으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너무 행복해 보였거든요. 마침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공부할 수 있는 한겨레 그림책학교가 눈에 들어와서 도전했어요. 공부를 시작한 지 거의 5년 만에 꿈이 이루어졌네요.”
▲ 한겨레 그림책 학교에서 만든 초기 섬네일
작은 사랑의 표현으로도 누군가는 정말 살아갈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았어요.
“여러 동물의 특징을 살린 가족사진 이야기를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러면 가족이 없는 동물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으로 발전해서 현재 이야기로 다듬어졌어요.
『숲 속 사진관』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작은 사랑의 표현이 만들어 낸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숲 속 동물들이 가족이 없는 외로운 꼬마 판다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 주는 이야기가 ‘너무 가볍다’거나, ‘가족사진을 찍어 주는 것만으로 이야기의 힘이 있느냐’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한동안 이 질문을 놓고 제 그림책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희 가정은 컴패션이라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를 통해 두 아이를 후원하고 있는데, 적은 돈과 편지만 보내도 그 아이들은 절망과 같은 환경 가운데서 살아갈 희망을 품게 돼요. 실제로 필리핀에 가서 컴패션의 후원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심각한 가난과 절망스러운 환경에서도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예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고 나서 제 생각에 확신이 생겼어요. 작은 사랑의 표현으로도 누군가는 정말 살아갈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제 그림책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작은 사랑을 표현할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후로 이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작은 사랑의 표현으로도 누군가는 정말 큰 힘을 얻어요. 특히 어린 아이들이요. 나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가까운 주변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고, 작은 도움을 드리고, 작은 사랑의 표현을 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따뜻한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이런 공동체에서 살아감이 큰 힘이 될 거에요.
저희 가족이 함께 만든 그림책이에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림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만 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작업 속도도 나지 않고, 작업할 때마다 다시 감을 잡아야 했죠. 그런 점이 조금 힘들었어요. 그림책을 계약하고 출판하기까지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제게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어요. 작업 시간을 배려 받기 위해 작은 회사로 이직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졌고, 저희 가정엔 두 아이가 태어났어요.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시간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그림책 작업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완성한 그림책이라 저희 가족이 함께 만든 그림책과 같은 의미가 있어요”
힘들게 작업하신 만큼 모든 장면이 다 사랑스러우시겠지만, 그중에서도 작가님께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모든 동물이 판다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마음에 많이 남아요.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인데, 따뜻하고 밝은 느낌이 나면서도 해질녘의 차분한 여운이 남는 느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수정해도 느낌이 나오지 않아서 거의 인쇄 날짜가 임박할 때까지 계속 수정을 거듭했어요. 그래도 고래뱃속 출판사 여러분의 조언으로 결국 마음에 들게 나와서 너무 감사해요.”
▲ 마지막 장면. 외로운 꼬마 판다를 위해 숲 속 동물들이 가족 사진을 찍어 주는 모습을 따듯하면서도 밝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한겨레 그림책 학교 졸업 작품집에 실려 있는 그림은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수작업하셨는데, 컴퓨터그래픽으로 방향을 바꾼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작업해야 하고 좁은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라 제 작업공간과 작업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장과 수정이 쉬운 컴퓨터 그래픽이 저에게 가장 알맞은 도구였어요. 덕분에 틈틈이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었고요.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작업했는데요. 아날로그 사진기와 필름이 주요 소재인 만큼 가능하면 따듯한 색감과 느낌을 많이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 작업 여건상 수작업보다는 컴퓨터 그래픽이 알맞았다. 덕분에 틈틈이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완성도를 높여 갈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에릭 칼’ 작가 할아버지를 늘 마음에 품고 있어요. 세계의 모든 어린이에게 사랑받는 그의 수많은 작품도 아주 멋지지만 예전에 본 에릭 칼 작가 할아버지의 사진에서 물감에 지저분해진 옷을 입고 붓을 들고 미소 짓는 모습이 바로 딱 제가 닮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었거든요.^^
정말 마음에 드는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다 읽고 나서 왠지 꼭 안아 주고 싶잖아요. 그렇게 그림책을 읽고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마음에 느껴지는 감동 때문에 그 책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안아 주고 싶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삼십 년 후 물감이 묻은 옷을 입고 붓을 들고 미소 짓고 있는 이시원 작가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책을 끝낸 이시원 작가님.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