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내리는 밤』 정유진 작가 인터뷰
고단한 과정에서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한 힘을 주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표지 이미지>
『달 내리는 밤』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두 번째 창작 그림책이지만 여전히 꿈인가 싶을 정도로 신기합니다.
『달 내리는 밤』은 달에 닿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토끼와, 그 토끼의 소식을 전해 들은 동물들이 달을 향해 탑을 쌓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몇 년 전 그림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었던 시기에, 여행하다 우연히 들른 미술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컵을 그린 작은 캔버스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작가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컵을 매일 그려서 모아 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면서 만약 작가가 첫 번째 날 그린 컵 그림이 만족스러웠다면 작은 성공은 될 수 있었겠지만, 다음 날 컵 그림을 다시 그리지는 않았을 테니, 어쩌면 작은 실패들이 모여 이렇게 멋진 작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찾아 보니 작가님의 의도는 저의 생각과는 다른 훨씬 고차원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였지만요.)
지극히 제 개인적인 해석이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고 여행에서 돌아와 포기하려던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그림책인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가 완성되었고, 동시에 두 번째 그림책인 ‘달 내리는 밤’의 주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초기 섬네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성공과 실패가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있는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스스로 생각했던 결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보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결과가 되기도 하니까요.
작품을 들여다보면 꿈의 주체이자 목표인 달보다도, 많은 동물 친구들이 함께 하나의 탑을 쌓아가는 모습 자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 과정을 섬세히 묘사함으로써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고단한 과정에서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한 힘을 주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그림책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분명히 혼자서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는데, 지나 보면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도움과 손길들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고래뱃속과의 든든한 협업이 없었다면, 가족들의 따뜻한 격려가 없었다면, 하다 못해 냉장고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없었다면 이 책의 완성은
상상도 할 수가 없거든요.
<초기 채색 연구>
전작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와 이번 신간인 『달 내리는 밤』은 어떻게 보면 모두 일상 속의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전체적인 톤에 있어서는
그 어떤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의 작업 과정에서 지난 작품과는 어떤 것들이 달랐을지 궁금합니다.
작업할 당시 저의 관심사나 심리 상태가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를 구상할 때에는 환경에 무관심했던 제 모습이 투영되다 보니 자기 반성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로 작업했다면,
『달 내리는 밤』은 계획한 일들이 성공할 수 있을지 끝없이 의심하는 저 자신을 안타까워했던 시절에 시작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두에게 힘이 되는 그림책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작과 다르게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달 내리는 밤』에서 등장하는 탑은 매우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동물들은 새로운 달놀이를 발견하게 되지요.
결말부에서 동물들이 즐기는 달놀이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동물들은 달에 닿기 위해 하늘만 올려다보며 탑을 쌓았는데, 탑이 무너지고 나서야 자신들이 달 속에 이미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동물들은 실제 달에 간 것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실패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유의미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달놀이를 하는 장면에서는
그림이 넓게 펼쳐지며 앞의 시점들과는 다르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전지적 시점으로 표현하였고,
동물들이 물놀이를 하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며 작업하였습니다.
<초기 스케치>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동물들의 눈동자 속에 가득 차 있는 달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탑을 쌓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만들어진 추억이나 경험치가 될 수도 있고,
동물들이 앞으로 만들어 갈 또 다른 희망이나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페인터’라는 디지털 작업과 수작업을 병행하였습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혹은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을까요?
동물들이 땀을 흘리며 탑을 쌓는 장면과 비가 와서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동물들의 땀과 빗방울이 모여 샘이 커질 수 있었고, 탑이 무너졌기 때문에 커진 샘에 비친 달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 보니 탑을 쌓는 과정에서의 땀(노력)도 절대 헛되지 않았고, 탑을 무너지게 했던 빗방울(방해물)도 또 다른 성공을 위해 꼭 필요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저에게 토닥임이 되어준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초기 스케치>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펼쳐지는 두 장면과 마지막 장면입니다.
– 탑을 쌓아 달에 거의 닿을 듯한 장면(동물들 시점에서의 목표로 삼은 달)
– 커진 샘에 비친 달 속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는 장면(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달)
– 그리고 눈동자에 달을 한가득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동물들 마음속에 새로 생긴 달)
이 장면들에 등장하는 ‘같지만 다른 달’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주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장면들이었거든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동물을 토끼로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여행에서 돌아와 주제가 정해졌고 어떤 이야기에 담아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인간 탑을 쌓는 축제(스페인 카탈루냐의 전통행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향해 탑을 쌓는 것이 주제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목표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평소에 산책하면서 지나치던 조형물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주 걷는 산책로 옆 작은 미술관 옥상에 조형물이 하나 있거든요. 달에 사다리가 놓여 있는 조형물인데, 덕분에 달을 목표로 탑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사람보다는 동물들이 탑을 쌓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달에 가장 가고 싶은 동물이 누구일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끼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일 년 넘게 작업을 하다 보니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과정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이 작업의 주제가 저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기도 했거든요. 이 작업 때문에 힘들었지만 동시에 이 작업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책, 그리고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요? 앞으로 그림책을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저에게 그림책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반성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하고,
토닥토닥 안아 주는 이야기를 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그 시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작업 과정>
“나에게 『달 내리는 밤』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따뜻한 토닥임’입니다.
작업 내내 이 이야기가 ‘걱정하지 말라’고 ‘잘하고 있다’고 저의 무거워진 어깨를 토닥여 주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는 그림책이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이 『달 내리는 밤』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순간에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탑을 열심히 쌓고 있는 모두를 응원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동물들과 함께 한바탕 달놀이를 즐기며 쉬어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