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석
점프 점프

By 2016년 02월 24일8월 17th, 2021작가 인터뷰

<점프 점프> 정인석 작가 인터뷰

“독자 두세 분과 커피 한 잔 하고 싶군요.”

▲ 표지 이미지

 

『점프 점프』가 출간되었습니다. 고래뱃속과 만난 지 만 삼 년, 한겨레 그림책학교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지는 사 년만에 완성된 셈인데요.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이 드디어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책이 완성되면 굉장히 기쁘고 감동적인 마음뿐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이 나오고 한 발 떨어져서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음……, 이건 다른 식으로 바꿔 보아도 좋을 것 같네.’부터 ‘책을 보는 사람들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을까?’, ‘내가 전달을 잘하고 있는 건가?’, ‘다른 이미지로 그려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점프 점프』는 다음 작업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 책도 그럴 겁니다.”

 


▲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와 장면 연출을 위해 수 차례 스토리보드를 다듬었다.

원래 다른 일을 하시다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다는 정인석 작가님. 작가님께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를 여쭤보았습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니까요.
“학교 다닐 때, 저는 소위 말하는 ‘범생이’였어요. 대학, 군대, 직장…….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로 정해진 길로 나아갔죠. 시키는 것, 정해진 것만 잘하면 되었지요. 그러다 문득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배낭여행을 떠난 거예요.
여행 중에 낯설고 인상적인 경험을 많이 했어요. 가령 스무 살 청년과 쉰 살 장년이 결혼과 연애에 대해서 잡담을 나누는데,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거예요. 그들은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았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어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는 거죠. 한국이라면,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어려운 이야기죠. 그래서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림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점프 점프』 프로필에도 쓰여 있듯이, 서점에서 숀 텐의 『도착』을 보고부터였어요. ‘그림책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가 생겼거든요.”

일본 오키나와에서 돌고래가 쇼를 하는 도중 수족관 밖으로 점프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눈에 띄더라고요.
왠지 관심이 갔어요.
“창작 그림책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적합한 소재를 찾는 것이 어려웠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보았지만 어딘가 내 것 같지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돌고래 이야기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답니다.
제가 당시에 수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접영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바다, 수영, 스쿠버 등의 검색어로 동영상을 찾아보았어요. 접영을 돌고래영법이라고도 하기에 ‘돌고래’로도 검색했더니, 마침 일본 오키나와에서 돌고래가 쇼를 하는 도중 수족관 밖으로 점프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눈에 띄더라고요. 왠지 관심이 갔어요. ‘돌고래는 왜 수족관 밖으로 나간 걸까?’, ‘탈출하려고 한 건가?’, ‘어디로 가려고?’ 등등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어느덧 돌고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돌고래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싶어져서 돌고래에 관한 기사나 영상, 이미지 자료 들을 찾아봤어요. 수족관에도 가 봤고요. 돌고래 쇼도 보고, 촬영도 하고요. 이런 의문들이 『점프 점프』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가 되었어요.”

 


▲ 다양한 표지 시안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싶은 장면은 흑백으로 채색하였습니다. 바다에 살고 있는 돌고래들을 그린 앞면지와 거북에게 들은 위험한 바다를 거대한 파도로 표현한 장면, 커다란 달이 떠 있는 바다에서 고래들이 수면 위로 점프하는 뒷면지죠. 책이 출판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핑크가 바다로 갔나요? 못 갔나요?”였어요. 독자들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독자들이 직접 결말을 선택하기를 바랐거든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모든 것은 본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달라지더라고요. 핑크의 입장이 되어 찬찬히 그림책을 보면 핑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될 거라 생각해요.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어서인지 이 마지막 장면에 특별히 애착이 갑니다.”

 


▲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뒷면지. 흑백으로 채색하여 결과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다.​

다양한 재료 중에 유화 물감으로 작업하시게 된 이유와 작업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유화 물감은 그림책 작업에 많이 쓰이는 재료는 아니에요. 아무래도 물감이 쉽게 마르지 않고, 작은 인물을 표현하기가 까다롭거든요. 그럼에도 유화 물감으로 작업을 한 이유는 돌고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이 책은 돌고래가 주인공이고 돌고래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인물 표현이 너무 부각되면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니까요. 작은 인물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장점이 되는 셈이죠.
또 유화 물감의 쉽게 마르지 않는 특징은 다른 색과 섞일 수 있는 시간이나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래서 바다나 수족관 물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죠. 그렇다고 마르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되니까 캔버스 대신 종이 위에 채색을 했어요. 종이가 물감을 흡수해서 마르는 시간을 단축시켜 주거든요. 특히 물속을 표현할 때는 종이 위에 스케치를 하고 유화로 채색을 했어요. 그 위에 코팅제를 바르고 마르면 다시 채색을 했지요.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여 물의 깊이감과 무게감을 표현했답니다.
앞으로도 작업의 내용이나 주제에 따라 유화, 아크릴, 색연필 등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할 생각이에요.”

 

실화를 바탕으로 작업한 만큼 살펴야 할 것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두 가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색다른 캐릭터의 돌고래가 필요해서 피부가 핑크색인 돌고래를 떠올렸어요. 핑크색 돌고래가 있는지 조사해 보았더니 아마존에 서식하는 분홍돌고래가 있었어요. 그런데 바다가 아니라 강에 산다네요. 수족관 돌고래가 바다를 꿈꾸는 이야기 구조를 바꾸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어요. 또 돌고래를 옮기는 차량도 문제였어요. 돌고래가 점프를 하려면 천장이 뚫린 수족관 차여야 하는데 이런 차가 실제 돌고래 수송에서 이용될 수 있는지 궁금했지요.
자료를 찾아봐도 답을 알 수 없어 고민 끝에 서울대공원에 전화를 했어요. 제가 이야기 전개상 필요한 차량을 설명했더니, 돌고래를 옮길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하지만 바다에 살면서, 점프를 잘하는 분홍돌고래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분홍돌고래가 아닌 색소가 결핍돼 피부색이 핑크색인 ‘알비노 돌고래’를 모델로 작업을 진행했지요.”


▲ 실화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그림책이어서 확인해 보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책이 출간되기 몇 개월 전에 일본에서 핑크색 돌고래가 포획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이 돌고래는 2013년부터 다이지 바다에서 어미 돌고래 옆에 꼭 붙어 다니는 모습이 관찰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귀한 동물을 일본 돌고래 사냥꾼들이 그냥 놓아둘 리 없죠. 결국 2014년 1월, 포획업자들은 배몰이 사냥으로 한 살도 채 안 된 알비노 돌고래를 산 채로 포획했어요. 이 과정에서 같은 무리에 있던 70여 마리의 돌고래들이 살육돼 고깃덩어리가 되었고요. 아직 다 자라기도 전에 어미를 잃고 수족관에 갇혀 버린 분홍색 돌고래를 사람들은 ‘엔젤’이라고 부른답니다. 저는 엔젤이 ​『점프 점프』의 주인공 핑크처럼 높이 점프해서 탈출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고래잡이가 중단되기를 바랍니다.”

 

엔젤 이야기를 하실 때 목소리에 힘을 주는 모습에서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분위기를 바꾸어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는 누구인지와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저에게 처음 감동을 준 그림책 작가는 ‘숀 텐’ 입니다. 서점에서 ​『선택』이라는 책을 본 순간, 그 동안 갖고 있던 그림책이나 동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 전에는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책이고 순수회화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죠. 제가 스스로의 편견에 갇혀 있었던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숀 텐은 달랐어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더라고요. 그가 그린 그림책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는 것이 보이고요. 숀 텐의 작품은 자신의 경험이나 일상의 소소함에서 시작하거든요. 그것이 뼈대가 되고, 상상력이라는 살이 붙어서 커지고, 사회와 철학이라는 호흡을 넣어서 작품이 완성됩니다. 모든 면에서 부러운 작가입니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기간 작업한 책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고 계실 작가님, 다음번엔 어떤 작업을 하실 계획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동물과 인간이 교감하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 생물학에 관한 책을 읽는데, 앞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자연과 교감하도록 노력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까, 인간과 인간의 교감일 수도 있겠네요. 교감을 하려면, 먼저 관찰하고 경험하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제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동물과 인간을 관찰하고 있어요.”

“두세 분과 커피 한 잔 하고 싶군요. 아이들이라면,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흙장난이나 물장난 치고 싶어요. 같이 앉아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이것에 관해서는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재밌어요?’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요.”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는 요청에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진짜 독자들과 작가님이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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