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춤> 정인하 작가 인터뷰
“평범한 사람들이 슬쩍 드러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싶어요.”
세탁소 아주머니가 춤을 춥니다. 채소 가게 아주머니가 춤을 춥니다.
건설 노동자가, 퀵 서비스 배달원이, 교통 경찰이 춤을 춥니다.
삶의 현장은 무대가 되고,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은 멋진 춤동작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밥․춤』의 정인하 작가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표지 이미지
안녕하세요? 작가님.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책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먼저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으신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책인지라 시원섭섭해요. 매번 더미북으로 넘겨 보다가, 하드커버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책을 받아보니 새삼 신기합니다.
맞아요. 작업 기간 내내 지겹도록 보고 또 보는데도 책으로 만들어진 걸 보면 또 새삼스럽죠. 낯설기도 하고요^^
『밥․춤』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힘차게 움직이는 몸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운동하는 모습이나 춤추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던 중에 문득 우리가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노동하는 여성의 모습을 춤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밥․춤』은 처음부터 그림책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죠.
일반적으로 그림책을 만들 때는 이야기의 얼개를 만든 다음에 어떻게 이미지로 표현할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거꾸로 낱낱의 그림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요.
그림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요?
처음에 『밥․춤』은 전시를 위한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그 그림을 캘린더로 엮었고요. 전시장 벽면에 여러 동작의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추는 군무처럼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한눈에 다가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획을 책으로 만들기로 하고 보니, 그저 그림을 차례대로 엮는다고 책이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진행되는 책의 속성에 맞게 흐름이나 리듬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고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 전시 모습
▴ 캘린더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을 꼽는다면 어떤 장면인가요?
그 이유도 알고 싶습니다.
대파를 들고 있는 채소 장수 그림이에요. 가장 여러 번 반복적으로 그렸던 작업이기도 하고요. 채소 장수의 포즈를 춤으로 만드는 부분이 다른 직업에 비해 잘 풀리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는데, 문득 한 손에 기다란 대파를 집어드는 모습에서 긴 칼날을 날렵하게 휘두르는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그래서 검무와 연결지어 그려 보니 괜찮더라고요.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 채소 장수의 포즈를 춤으로 만들기가 가장 어려웠다. 아래는 채소 장수 B컷.
그렇다면 아쉬운 장면도 있나요?
수타 장인(첫 번째 수타 장인) 장면이 다소 아쉽게 느껴져요. 그림을 책으로 엮으면서 가운데 부분이 접히게 되는데, 특히 이 컷이 영향을 많이 받아서 한쪽 팔이 상대적으로 짧아 보여요. 미리 접히는 부분을 예상하고 작업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면지에는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넣었는데, 물건들 대신 동네 풍경이 한눈에 드러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 스토리보드
처음에 달력으로 작업했을 때는 한 달에 두 장면씩 모두 스물네 명의 등장인물이 있었는데요.
책으로 만들면서 몇몇 장면이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빠진 장면 중에 특히 아깝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농부를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데 책에는 넣지 못했어요. 책으로 만들면서 주제를 더 확실히 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흐름에 맞지 않아서 빠졌거든요.
네. 저는 헤어드레서와 해녀 그림, 요구르트 배달 아주머니도 떠오르네요.
재미난 장면들이 빠지게 되어 몹시 아쉬웠어요.
▴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빠진 장면들. 농부, 제빵사, 요구르트 배달원, 생선 장수
이 책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또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전시를 위해 기획한 작업을 책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어렵고 오래 걸렸어요.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놔두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던 도중에 문득 괜찮은 흐름의 문장이 떠올랐어요.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서 메모해 두었지요. 최종 원고가 이때 떠오른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작업 과정 중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재미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싼 종이를 덜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밥․춤』의 그림은 공들이며 오래 매만지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순간의 긴장감이나 느낌이 중요해서, 많이 그려 볼 수밖에 없었거든요. 처음에는 쌓여 가는 실패작들에 속이 쓰렸는데 갈수록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요.
▴ 작업 과정
『밥․춤』의 자연스러운 곡선과 움직임들이 수많은 실패 끝에 건져 낸 것들이었군요.
도공들이 잘못 구워진 도자기를 가차없이 깨버리는 것과도 뜻이 통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밥․춤』은 어떤 기법으로 작업하셨나요?
그러한 기법으로 작업하신 이유는 무엇인지도 말씀해 주세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서 작업했어요. 아크릴 물감은 묽게도 쓸 수 있고 아주 진한 터치도 가능해서 이 작업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마무리는 수채 물감으로 가볍게 입혔고요.
나에게 『밥․춤』은 ( )이다. 빈 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신가요?
동네의 재발견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데요. 다음 작품에 대해 살짝 귀띔해 주세요.
평범한 사람들이 슬쩍 드러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싶어요. 유머러스한 순간일 수도 있고 사소한 행동이나 말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순간일 수도 있고요. 무심하게 흘러가는 ‘어떤 순간’들을 제가 할 수 있는 언어와 리듬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자분이 이 책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궁금합니다. 그저 미소 짓기만 해도 족하겠지요. 그저 책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