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채 소년』 채다온 작가 인터뷰
꿈을 잡는 게 아니라
꿈과 함께 공존하는 것 같았거든요.
<표지 이미지>
『잠자리채 소년』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드디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 그림책을 처음 기획한 게 대학교 2학년 때였거든요. 그만큼 오랫동안 작업했었고, 그동안 책에서 나온 것처럼 저 자신도 방황과 꿈꾸는 일을 반복했어요.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여서 나오다니 정말 ‘드디어!’라는 느낌이 듭니다. 🙂
『잠자리채 소년』은 이야기 설정부터가 무척 독특합니다. ‘잠자리채 모양의 얼굴을 가진 소년’이라는 주인공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머릿속에 선명하게 나비를 잡으려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잡는 것은 가능하지만 잡은 것을 간직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같이 어우러져서 잠자리채 얼굴을 가진 캐릭터가 나온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방황하던 저의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초기 스토리보드>
이 이야기는 잠자리채 소년이 잠에서 깨어나 나비를 놓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작가님이 이 이야기 안에서 설정하신 ‘나비’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 작품에서 제게 나비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꿈’입니다. 닿을 듯 말 듯하고 잡은 것 같으면 놓치고, 또 한편으론 너무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 다치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걸 하다가, 결국에는 그리워서 다시 보고 싶은 꿈이요!
잠자리채 소년이 나비를 대신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만나게 되는 비, 구름, 물고기 등에도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상징물들을 이야기 속에 담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잠자리채 소년은 고체 형태만 잡을 수 있고 보관할 수는 없는 한계이자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비와 구름은 애초에 잡을 수 없는 허상을, 물고기와 돌은 잡을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로 조절하지 않으면 끌려가게 되거나 일어설 수 없게 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렸습니다. 때로는 허상을 좇기도 하고, 때로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고, 그러다 끌려다니기도 하고 심지어 무너지기도 하는 보통의 일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돌을 담는 장면은 제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과식하는 날과 많은 부분 연관 지어 그렸답니다.
<초기 스토리보드>
작가님도 살아오면서 비, 구름, 물고기, 혹은 바위를 만나신 적이 있나요? 또 그때는 어떤 마음이었고,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도 비, 구름, 물고기, 바위를 만나는 일상과 과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어떤 고민들은 해결되지 않고 저와 함께하고 있고, 저는 그 길 위에서 헤쳐 나가려고 하고,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고 꿈도 꾸니까요! 처음에는 이겨 내려고 많이 애를 쓰고 해결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많이 쓰리곤 했는데 겪어 보니,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른 방법이 없구나. 내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수밖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해요! 그리고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하고 싶은 일들과 함께 뒤섞여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있군…(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건 내버려 두고 있어요) 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결말은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결말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나요?
저는 ‘꿈과 상관이 있든 상관이 없든, 지금까지 우리가 꿈을 생각하면서 보내온 몸짓과 과정이 의미 없지 않다. 결국에는 그 꿈도 꿈꾸는 사람에게 다가올 것이다.’라는 다소 진부하지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우러러보는 이상적인, 자신의 적성에 맞게 꿈을 이룬 것 같은 사람들은 꿈을 잡는 게 아니라 꿈과 함께 공존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꿈과의 공존 가능성을 열어두며 결말을 맺었습니다.
작가님만의 ‘나비’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저의 나비에 이름을 아직 붙여 주지 못할 것 같아요. 아직 어떤 과정 중에 있다고 느끼고 있고, 구체적이지 않은 이루고 싶은 것들이 산란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나마 가까운 이름이 있다면 ‘이루고 싶은 것’인데, 일단은 흘러가도록,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정형화되지 않은 상황을 지켜보고 싶어요.
<초기 더미북>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제가 물고기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잠자리채 소년이 물고기를 놓치는 장면을 굉장히 재밌게 그렸어요. 물고기 비늘이 반짝반짝하게 잘 표현된 것 같아 완성하고 많이 뿌듯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구름이 잠자리채 소년을 통과해가는 장면입니다. 사건들이 나를 지나가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안타깝지만 시원한 느낌도 들었거든요!
<물고기 장면 초기 더미북>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돌을 줍는 장면입니다. 돌의 생김새, 돌의 위치, 돌의 그림자, 명암, 질감 등등 고려할 게 많았어요. 또 책에 실리지 못한 돌 잡는 장면들이 굉장히 많은데,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돌과 땅의 갈라짐을 반복해서 똑같이 그려야 했어서 완성하는데 그 어떤 장면보다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진도도 매우 매우 느리게 진행되서 ‘때려칠까? 아니면 컴퓨터로 작업을 할까?’ 등등 고민들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바위 장면 초기 더미북>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종이 위에 연필 소묘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4B만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더 섬세한 표현을 위해 HB~4B까지 다양한 연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연필심을 얇게 깎아서, 켜켜이 쌓여 가는 밀도가 섬세하게 보이도록 그렸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림책은 작은 전시회 같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이수지 작가님의 『파도야 놀자(비룡소, 2017)』를 보고 그림책에 반하게 되었는데, 글이 없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지만 그림책을 읽는 동안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어요. 작가의 세계를 전달받고 소통할 수 있는 점이 꼭 작은 전시회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앞으로도 『잠자리채 소년』에 등장했던 머리가 유리병인 친구의 이야기나, 고민이 많아서 잠들지 못하는 밤에 대한 판타지 동화 『잠이 오지 않는 밤』 등으로 제가 쓰고 그린 그림책을 통해 찾아가는 작은 전시회처럼 여러분과 많이 만나 뵙고 싶습니다.
<초기 더미북>
작업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책을 작업할 때가 대학교 2, 3학년 때였어요. 이때 처음으로 기획해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지금보다 판형을 훨씬 크게 잡고 시작해 그리다가 ‘아, 이러면 절대 완성을 못하겠다’ 싶어서 그림 크기를 줄이고 처음부터 다시 그리게 된 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출판사와 계약 후 각 장면마다 밀도가 맞지 않아서 다시 새로 그려야 했던 작업 등 둘 다 고생을 많이 했다 느껴선지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네요ㅎㅎ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처음에는 글 없는 그림책으로 작업을 하다가, 출판사의 제의로 글을 추가로 작성하고 그림을 줄이다 보니 메시지 전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평범한 노력과 하루 속에서 우리가 겪는 과정과 경험들, 특별하지 않고 때로는 괴롭기까지한 상황들, 그 모두가 의미 없지 않다’라는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다행히 고래뱃속 분들이 적절히 저를 이끌어 주셔서 주제가 너무 무겁지 않고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완성할 수 있었답니다.
“나에게 『잠자리채 소년』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나에게 『잠자리채 소년』은 ‘잠자리채 소년’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어려움을 겪는 중에는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그대로 바라봐 주고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그래서 다소 넌센스하지만, 저의 ‘잠자리채 소년’을 방황하는 그 모습 그대로 말해 주고 싶어요.
<초기 더미북>
독자들이 『잠자리채 소년』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잠자리채 소년이 처음 저에게로 와 주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헤매고 있는 모습을 자주 관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모두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얼마나 열심히 했든, 노력하고 있든, 심지어 잘하고 있든 그와 상관없이 본인들은 게으르고 못났다고요. 그래서 저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주인공에 이입해서 보잖아요? 그래서 잠자리채 소년을 통해 자신을 이입해 보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어떤 날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과 거리가 있는 일일지언정 그 모든 게 정말 의미가 없었냐고 한번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저자인 저의 결론은 ‘의미 없지 않다‘지만, 이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한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계기만으로도 여러분을 또 다른 결말에 데려가 줄 거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