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밥> 박광명 작가 인터뷰
“이 책을 만들면서 저도 철이 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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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명 작가가 얼마 전 첫 번째 그림책 『대단한 밥』을 출간했습니다. 첫 번째 그림책이라 감회가 더욱 새로울 것 같은데요. 소감을 들어 보았습니다.
“출간 소식을 듣고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단한 밥』은 제가 쓰고 그린 첫 번째 책이라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더 잘 하고 싶었고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지요. 3년여의 시간 동안 공을 들인 첫 책이 나온다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홀가분하고 벅차요.”
▲『대단한 밥』 초기 섬네일.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쳤다.
조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림책을 기획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궁리하고 있었죠. 그때 단발머리를 한 조카가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 조카는 부쩍 밥투정을 부리고 밥을 잘 먹지 않으려 하던 시기여서 언니가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조카에게 밥의 소중함을 이야기해 주는 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카의 눈높이에서 고민하고 조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 이 책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꼬마아이는 작가의 조카가 모델이 되었다.
조카에게 들려주듯이 간결한 문장과 쉬운 어휘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지요. 조카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조카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박광명 작가의 어린 시절도 알고 싶어졌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 북촌 한옥에서 자랐어요. 서울이지만 조용하고 예스러움을 많이 간직한 곳이죠. 저는 사랑하는 강아지 복이와 함께 한옥 마루에서 만들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어요. 장독대에 올라가면 아주 큰 은행나무가 보였는데, 항아리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보기도 했고요.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공상을 하곤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공상들을 그림으로 그려 내고 있고요.”
한 장 한 장 모두 작가에게 소중한 장면일 텐데요.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엄마가 이른 아침에 밥을 하는 장면이 가장 좋아요. 어릴 때 제가 살던 집은 한옥이어서 겨울이면 많이 추웠어요. 집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지요. 겨울철 아침이면 엄마는 두꺼운 스웨터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 준비를 하셨어요. 이 장면은 그때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렸어요. 엄마가 직접 무를 자르며 모델도 해 주셨고요. 어릴 때는 이른 아침 언 손을 녹여 가며 음식을 만들어 주셨던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커 가면서 그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결국 밥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머니 덕분이겠죠.
▲ 추운 겨울이면 두꺼운 스웨터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 준비를 하셨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렸다.
『대단한 밥』은 고무판화, 물감, 색연필, 컴퓨터그래픽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만큼 작업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요. 그렇게 작업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제 그림은 마치 ‘헤쳐 모여’ 같아요.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하고 활기찬 모습을 나타내면서도 시각적인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는 채색 방법을 고민하던 중, 어릴 때 해 본 ‘고무판화’가 떠올랐어요. 고무판에 물건을 하나하나 그리고 조각칼로 파 내어 종이에 찍은 다음 물감과 색연필로 마무리했어요. 그리고 스캐너로 옮겨 이미지 파일로 만든 다음 컴퓨터로 모으고 구성해서 그림을 완성했지요. 마치 ‘헤쳐 모여’ 같아요. 이렇게 완성된 그림 파일은 이 세상과도 비슷해요. 하나의 지구 안에 수많은 사람과 동물, 식물, 사물 들이 함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거든요. 만약 여러분이 이 책의 원본 파일을 보시게 된다면 ‘레이어가 이렇게나 많다니!’ 하며 놀라실지도 몰라요.”
▲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물은 하나 하나 고무판에 새겨 찍거나 연필로 그린 다음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
“예전에는 시장이나 음식점을 가도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리서치를 하면서 그분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 어느덧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요즘은 음식을 배달하는 아저씨, 생선을 파는 할머니, 편의점에서 일하는 학생 등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단한 밥』 속의 인물처럼 느껴져서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게 된답니다.”
『대단한 밥』을 만들면서 철이 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께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대단한 밥』은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은 책이에요. 특히 경매장 장면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힘겹게 리어카를 움직이는 부부부터 추워서 모닥불로 뛰어오는 파란 얼굴의 아저씨,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젖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지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여러 번 보면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보일 거예요. 그러면 더 재밌는 책이 되지 않을까요?”
▲ 그림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다음번에는 레이먼드 브릭스의 『스노우맨』 같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수채 물감과 색연필로 파스텔톤의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이 담긴 아름다운 책, 어른이 되어도 간직하고 가끔씩 펼쳐 보고 싶은 그런 책을 만들고 싶어요.”
첫 번째 책 출간의 기쁨을 조금씩 가라앉히며 걱정스럽게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박광명 작가님. 작가님의 다음번 그림책이 무척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