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미안 작가 인터뷰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급류에 휩쓸리지 말자고,
신중히 판단하여 낭설의 희생자를 만들거나
희생자가 되는 일이 없게 하자고
< 표지 이미지>
『거짓말』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마음 구석 한편에 쌓아 뒀던 기억과 말들을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듭니다. 초기 구상과 조금씩 달라진 형태로, 점차 구체화되는 이야기와 함께하는 동안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마무리하고 나니 마음이 놓입니다.
< 섬네일 >
거짓말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다른 사람들』 인터뷰 때 다음 책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와전되는 이야기를 하겠다 말씀드렸었는데요, 당시 작업 중이던 이야기를 중단해야 할 사정이 생겨 ‘소문과 진실의 왜곡’이라는 비슷한 주제로 다른 내용을 구상했습니다.
아마 어느 분이나 한 번쯤은 소문의 대상자, 소문의 전달자가 되어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뿐인데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거짓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빠르게 변형되어 끝없이 확산됩니다. 자극적이며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말은 파급력이 상당해서 진실이 더욱 묻혀 버리는 악몽 같은 상황을 대면하게 되죠.
결백을 주장하던 사람도 지쳐 마음이 약해지면 내가 아는 진실을 의심하게 됩니다. 현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일단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진실을 타인은 거짓으로 듣고, 거짓을 말할 때 비로소 사람들이 그를 믿어 주는 모순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인물들을 동물로 표현한 이유가 있을까요?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게 되셨나요?
같은 인간보다는 동물의 생김새가 한결 다양하기 때문에 개성이 뚜렷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가 동물에 관해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사람들이 동물들에게 덧씌운 선입견을 이용해 캐릭터성을 부여했습니다.
< 인물 설정>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급류에 휩쓸리지 말자고, 신중히 판단하여 낭설의 희생자를 만들거나 희생자가 되는 일이 없게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확실하게 믿으려면 먼저 의심을 거쳐야 하니, 타인을 신뢰하는 건 무겁고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의 모든 판단이 옳을 수는 없지만, 재고를 통해 하나의 오해라도 풀릴 수 있다면 의미가 있으니까요.
<스토리보드>
규리가 넘어지는 장면에서 누가 발을 걸었는지 정확히 드러내지 않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책 속의 다른 인물들은 내막을 모르는 상태로 ‘나’와 ‘태경’ 중 신뢰할 사람을 정해야 합니다. 사건의 관련자들이 서로 상치되는 주장을 할 때, 진위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는 자는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뿐이죠. 독자님들도 처음부터 ‘나’의 편에 서시기보다 두 인물의 언행을 바탕으로 누구의 말을 믿을지 고민해 보셨으면 해서 발을 거는 장면을 생략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나’의 심리만 서술되니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요.
작품의 결말에서 진실과 거짓말이 밝혀지지 않고 여전히 주인공의 억울함이 남은 채로 끝이 납니다. 전작 『다른 사람들』에 이어서 이 책에서도 생각의 거리를 독자들에게 많이 남겨 주셨고, 덕분에 ‘불편함을 그리는 작가’라는 별명을 얻으셨는데요, 별명이 마음에 드시나요? 불편함에 깔린 작가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별명이 조금 불편하네요. 농담입니다^^. 경험하거나 목격했던 현실을 반영하여 사건을 구성하다 보니 보는 분에 따라서 찜찜하게 느끼실 만한 결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고 유야무야되거나 비슷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곤 합니다. 개인이 마음대로 완결지을 수 없는 문제에 관해 다룰 때는, 이야기를 꼭 결론짓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이 앞으로의 선택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든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거짓말』을 지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요. 저는 도리어 여지없는 결말이 굳게 잠긴 문 같아 때로는 서운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불편함 속에 담긴 가능성을 함께 찾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표지가 가장 좋았습니다. 면지와 내지 작업을 마친 후 마지막에 그렸는데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고심 없이 순조롭게 진행했습니다. 표지 작업 과정이 본문 내용 전반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단계 같아서 후련했습니다. 후에 디자이너님께서 뒤표지를 좌우 반전하여 배치해 주셨어요. 책을 덮었을 때 토끼와 까마귀의 윤곽이 겹치도록 수정해 주신 것인데, 덕분에 책 고유의 형태에 맞게 의도가 살아났습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유난히 까다로웠던 장면은 없었습니다. 매 장마다 비슷한 심도의 고민을 안고 임했는데요, 앞서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말씀드렸던 표지를 비교적 쉽게 구상했습니다. 지속해서 쓰고 그렸던 작업의 마무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해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진한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후 보정과 채색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완성했습니다. 색채를 통해 직관적으로 분위기를 읽으실 수 있도록 장마다 배경색을 다르게 지정했습니다.
<표지와 뒷면지 스케치>
앞뒤로 인물이 배치된 독특한 표지도 인상적인데요, 표지에 담겨 있는 의미도 여쭤 보고 싶습니다.
긴 귀로 듣고 있는 검은 눈의 하얀 토끼와, 긴 부리로 말하고 있는 하얀 눈의 검은 까마귀를 대조시켰습니다. 토끼와 까마귀의 유사한 외곽선에는 진실을 닮은 거짓을 분명하게 가려내기 어렵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 외의 모든 요소는 명확한 차이가 보이도록 구성했습니다.
까마귀를 영악하고 불길하여 의심 가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또 대부분 까마귀 울음소리를 달가워하지 않죠. 토끼는 연약하지만 귀엽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고, 잘 들으며 눈치가 빠릅니다. 이렇게 대비되는 특성이 드러나게 배치했습니다.
까마귀의 항변은 물속에 잠겨 있어 타인에게 가닿지 못합니다. 까마귀는 호흡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죠. 토끼는 무언가를 해명할 필요도 없이 듣고 잘 살피기만 하면 됩니다. 노란 햇살 아래서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걷는 토끼를 앞표지에 둔 이유는 본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내용의 거짓말이 등장할지 짐작하기 어렵도록 했습니다.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으나 글을 쓰고 장면을 구성하면서 지난 시간을 자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진위를 모른 채 떠도는 말에 얼마나 쉽게 흔들렸는지 반성하기도 했고요. 헛소문의 대상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했습니다. 소문을 만든 사람과 전한 사람,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들을 떠올려 보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기억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가치 판단이나 저만의 관점을 은연중에 강요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표면적인 서사는 특정한 의도로 짜였지만 함께 보이는 이면의 것들은 여러 시각으로 읽히길 바랐거든요. ‘나’의 시점에서 흘러간 이야기를 ‘태경’이의 입장에서 다시 읽으셔도 되고, ‘나’는 정말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 있는지 예측하실 수도 있겠죠.
“나에게 『거짓말』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제게 『거짓말』은 ‘진실의 그림자’입니다.
독자들이 『거짓말』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업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에서 드렸던 말씀과 상통합니다. 자유롭고 새로운 관점으로 읽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거짓말』이 어떤 형태로든 독자님들의 마음에 닿아 위로나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이 책이 독자님들께서 앞으로 만들어 내실 이야기들의 밑거름이 된다면 제게도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