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얼굴』 경자 작가 인터뷰
우리는 저마다 무서워 하는 것이 있지만,
머릿속에서 그 두려움의 크기를 키울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 만든 공포에 쪼그라드는 일이 없길 바라요.
<표지 이미지>
『거대얼굴』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작업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데 작업 중에 방황을 좀 하는 편이라 꽤 오랜 시간 돌아온 것 같아요. 마침내 책이 출간되어서 너무 후련하고 기뻐요!!
<초기 스케치>
『거대얼굴』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반영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 ‘거대얼굴’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이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여덟 살 무렵이었어요. 자다가 무심코 눈을 떴는데, 눈앞에 제 몸보다 커다란 검은 개가 맞은편 침대에 앉아 있었어요. 놀라서 움직였다간 이불이 들썩여서
검은 개의 심기에 거슬리기라도 할까 봐, 숨도 아주 작게 쉬면서 식은땀이 뻘뻘 나도록 밤새 검은 개를 지켜봤어요. 그러다 새벽이 되었고 어스름한 푸른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방안을 비추는 순간, 저는 비로소 숨을 시원하게 뱉을 수 있었어요. 검은 개의 정체는 크게 뭉쳐서 말려 있던 이불이었거든요.
그 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지었어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두려워 하는 대상이 알고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전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쫄보’ 같은 성격 탓에 살아오면서 놓친 게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벌떡 일어나 불을 켜서 확인했다면 밤새 편하게 잘 수 있었을 일을,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검은 개의 몸집을 키웠던 그 밤 같은 날들이 살면서 많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을 보는 분들도 저마다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씩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머릿속에서 그 대상의 크기를 굳이 키워줄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 만든 공포에 쪼그라드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초기 채색>
작가님의 작품에는 항상 다른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시선과 개성 강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묘한 매력은 타고나신 걸까요?
저는 대화 중에 상대방이 지루해하거나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낌새를 잘 포착해요. 제 이야기가 지루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장황한 이야기가 어려워요. 대신 저는 서사를 잘 압축 시켜요. 길게 설명하는 건 못 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강약 있게 전달하는 것은 잘해요.
이건 타고 난 센스라기보단 주변의 눈치를 너무 봐서 생긴 후천적 능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림책은 제가 보기에 길고 장황한 서사보다 시처럼 강약 있는 한 문장이 개성 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초기 아이디어 구상>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동생을 납치하면 어쩌지, 엄마 목을 조르면 어쩌지.’ 하면서 아이가 가족들을 걱정하는 장면이에요. 가만 보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보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해요. 그 장면에서 아이가 가족을 많이 사랑하고 걱정하는 게 드러나서 좋아요.
<초기 채색>
날이 밝은 뒤, 이부자리에 실례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빨래를 하던 아이에게 무언가가 다가옵니다. 그 존재가 거대얼굴인지 엄마인지 알 수 없도록 으스스한 분위기가 조성되지요. 어쩌면 아이의 무의식 속 진짜 두려움의 대상은 부모님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는데요.
작품 속 아이에게 부모님과 가족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아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가족은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고요. 아이는 ‘거대얼굴’을 무서워하지만 무찌를 수 있다고 상상해요. 무찌른 후에 가족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이 아이가 상상하는 하이라이트지요. 하지만 오줌을 싸버려서 그 기회를 놓쳐요.
그것이 아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죠.
<초기 작업 과정>
책의 마지막 쿠키 장면에서 아이가 간밤에 만났던 것이 사실은 아빠 바지가 아니라 진짜 거대얼굴이었을 수도 있다는 단서를 남겨 두셨는데요. 작가님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그 장면은 주제를 해치는 것 같아서 뺄까 말까 고민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재미로 반전을 한 번 더 주고 싶어서 넣었어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그림 작업을 할 때 이야기상 꼭 필요한 요소만 그리는 편이라, 배경을 꾸미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아이의 방안을 묘사하는 데에 고민이 많았어요.
방안에 뭘 두어야 할지 고민되더라고요. 처음엔 권투 글러브라던가 장난감 칼자루와 같은 소품들로 가득 차게 그리려고 했어요. 벽 곳곳에 영화 속 영웅들이 그려진 포스터도
잔뜩 붙여 놓고요. 그런데 그리려고 보니까 왠지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싹 비우고 꼭 필요한 것만 그리게 되었어요.
<초기 작업 과정>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연필, 콩테, 목탄 등으로 작업했어요. 이 재료들의 좋은 점은 의도치 않았는데 손으로 그림을 만지다가 괜찮아 보이는 지점이 생기는 거예요. 우연에 기대어 그렸지만, 흑연이 종이의 표면에 닿았을 때 생기는 까끌까끌한 느낌이 공포로 가득 찬 밤 풍경을 그리기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결과적으로 재료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일까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저에게 그림책은 히말라야산. 계속 올라가 보고 싶은, 제가 도전하고픈 존재입니다. 그림도 지금은 거칠지만 저만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어요. 여든 살에는 제가 어떤 이야기를 그릴지도 궁금해요. 그래서 앞으로 계속 올라가 보려고요. 제 외장 하드에 마음이 슬플 때마다 써 놓은 이야기들이 한 보따리 있는데 그 이야기들을 앞으로 하나씩 풀어보고 싶어요. 슬플 때 썼던 이야기들이라 해피엔딩은 별로 없을지도…
<초기 스케치>
작업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슬프고 무서운 결의 이야기들을 많이 그려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작업 중에 결혼도 하고 출산도 했어요.
아이가 태어나니까 무척 행복하지만, 전과 달리 너무 산뜻한 생각들만 떠올라서 조금 아쉬운 기분(?)입니다.
“나에게 『거대얼굴』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버뮤다 삼각지대’ 입니다.
그림을 그리며 아주 오래 돌고 돌아왔는데, 맨 처음에 그린 그림과 달라진 점이 없어서요. (그동안 뭘 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