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아콩이』 윤성은, 김주희 작가 인터뷰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세상이
제가 염원하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표지 이미지>
『봄날의 아콩이』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윤성은) 김주희 작가님의 판화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림만 봐도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아요. 함께 책을 내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주희) 긴 겨울의 끝에서 따스한 봄의 기운을 느꼈을 때처럼 반갑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봄날의 아콩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윤성은) 『봄날의 아콩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창일 때 구상했습니다. 그 당시 동해안에 큰 산불이 났는데 소나무는 모두 타 죽었지만 참나무 등의 활엽수는 살아남았다는 기사를 보고, 나무들은 전쟁이 나고 불이 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고 글을 써 봤어요.
<그림 작업 과정1>
『봄날의 아콩이』 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주희) 마지막 장까지 글을 읽고 나서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새잎을 틔워 내는 나무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느껴졌습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그림에서도 느껴지게끔 만들고자 생각했습니다.
‘막내 도토리’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잡게 된 이유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윤성은) 굴참나무는 코르크 갑옷을 입고 있어서 산불이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도토리는 어떨까? 도토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막내 도토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저의 질문이 ‘막내 도토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채색 작업>
동화 장르 안에서 전쟁과 폭격, 생명과 죽음 등의 묵직한 주제를 담아내는 데에 많은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쓰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요?
(윤성은) <사마에게>(2020)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 영화는 시리아 내전 중에 태어난 딸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로, 실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지요. 한 아이가 자기 동생의 시체 앞에서 “제 동생이에요. 아무 잘못도 안 했어요!” 외치는 장면에서 눈물을 한참 쏟았습니다.
『봄날의 아콩이』 속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성은) 전쟁이 나고 불이 나자 엄마 나무들이 아기 열매들을 안고 도망치는 장면이요. 나무들도 산불이 났을 때 도망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주희) 엄마 굴참나무가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도토리들을 품에 안고 불길 속을 뛰어가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몸이 불에 타고 있는데도 있는 힘껏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참고 견디는 굴참나무의 모습에서 위대함이 느껴집니다.
<채색 작업>
그렇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윤성은) 어느 한 부분만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워요. 사실 이 글의 시작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거든요. 원래의 글이 혹평에 가까운 합평을 받게 되어 글 전체를 버리고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설정만 가져와 새롭게 이야기를 썼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고민이었죠.
(김주희) 마지막 장면이 가장 고민되었습니다. 윤성은 작가님의 의도가 마지막에서 가장 잘 드러나기에 그림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드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아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 번 장면을 수정한 끝에 중요한 장면일수록 본질을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정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나요?
(김주희) 지판화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지판화는 종이를 판재(印版)로 사용하여 이미지를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나무나 금속을 이용하는 판화보다 종이, 풀, 칼의 간단한 도구만으로 제작이 용이하고 종이 특유의 독특한 질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림 작업 과정2>
『봄날의 아콩이』 이야기를 섬세한 판화로 빚어내는 작업 중 있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김주희) 지판화는 종이의 밀도와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2번 정도 찍으면 판이 변형되어,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특히 섬세한 나무의 결을 찍는 장면에서는 한 번만 찍어도 무늬가 뭉개져서 나무가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는 실수하지 않으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습니다.
한 땀 한 땀 작가님의 손끝을 거치며 생명력을 발휘하는 판화는, 그 안에 담기는 정직한 땀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화풍일 것입니다. 판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작가님이 느끼시는 판화의 매력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김주희) 우습게도 영국 유학 시절 미술 재료 중 판화를 만들 수 있는 고무판이 저렴해서 고무판을 사서 시작했던 게 첫 판화를 접한 계기였습니다. 판화는 디지털 작업과 달리 손으로 직접 새기고 잉크를 묻혀 압력을 조절하여 찍어 내는 과정을 거쳐야 장면이 완성됩니다. 수작업으로 만들어 내는 그림의 느낌뿐 아니라 시간의 공정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과정 또한 제게는 큰 매력입니다.
<채색 작업>
이 이야기에서 끝없는 메아리처럼 줄곧 되풀이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살아남자’란 외침일 텐데요. 작가님에게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윤성은) ‘살아가는 일’이란 쉽지 않지만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곳 어딘가가 나무의 뿌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테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이 인간의 이기심, 폭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작가님에게 ‘평화’란 어떤 의미일까요? 작가님께서 염원하시는 미래의 모습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윤성은) 평화란 폭력이 없는 상태겠죠?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세상이 제가 염원하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초기 스케치>
이 이야기에는 모든 생명이 서로를 지키고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려는 희망이 가득 녹아 있어요. 이처럼 서사와 캐릭터 하나하나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님만의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윤성은) ‘오감으로 상상하기’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저는 작은 도토리였습니다. 작은 도토리가 되어 나무에서도 떨어져 보고, 다람쥐 입속에도 들어가 보고, 도토리 형제들이 바로 옆에서 불에 타 죽어 가는 것도 봤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면이나 그림을 그릴 때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주희) 내 작업이 스스로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채색 작업>
『봄날의 아콩이』를 통해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가요? 결말에 담긴 의미도 궁금합니다.
(윤성은) 우리나라도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종전이 아니고 휴전 중이기 때문입니다. 분단국가가 되어 얼마나 많은 가족이 헤어지게 되었을까요. 아콩이가 뿌리를 뻗어 굴참나무 가족을 만난 것처럼 전쟁 때문에 헤어지게 된 가족들이 다시 만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전작인 『안녕, 내 사랑!』부터 다채로운 캐릭터와 서사를 아우르는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가 인상 깊습니다. 이야기의 소재와 배경을 선정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윤성은) 여행 혹은 전시장에 가거나 기사, 다큐멘터리, 영화, 책을 보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것을 파고드는 것 같아요.
<채색 작업>
하루하루를 함께 연결되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응원이 있으신가요?
(윤성은) 엄마 굴참나무의 대사를 빌려 올게요.
“우리가 살아야 다른 생명들도 살 수 있단다. 모든 삶은 이어져 있으니까.”
다음으로 새롭게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성은) 다음 이야기도 전쟁 이야기를 구상 중입니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초기 스케치>
“나에게 『봄날의 아콩이』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윤성은) 희망.
(김주희) 사랑의 씨앗.
마지막으로,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윤성은) 전쟁 같은 삶이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좋겠습니다.
(김주희) 『봄날의 아콩이』에서는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희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살아가는 것이 때론 절망 속에서 버텨 내는 일일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책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