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달이 사라졌다

김전한
그림 채소
발행일 2023-11-20
ISBN 9791193138106 73810
형태 무선 190x247mm 92쪽
정가 ₩12,500

2024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도서

 

고래뱃속 창작동화 12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날,

마법을 잃어버린 달의 소녀 이야기

 

눈부신 발전과 역사의 한편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하여

 

 

달의 선녀 상아,

달의 소녀 수남

1969년 여름밤, 산골 마을 소녀 수남은 오늘도 달의 정령과 대화를 나눕니다. 손가락 튕기기 한 번이면 새하얀 달맞이꽃이 휘영청 달을 향해 우수수 피어납니다. 달에 사는 선녀 상아가 수남이에게 전해 주는 능력입니다. 건넛집 건너 모두가 친척이나 다름없는 이웃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월산1리에선 여전히 계집아이를 우습게 알지만, 수남이에겐 달의 정령의 힘으로 놀라운 일들을 벌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수남이가 원하기만 하면 햐얀 꽃 보라 꽃 활짝 피워내는 건 물론이거니와, ‘쥐잡기 비상소집’의 일환으로 희생양이 된 쥐들을 되살리고, 집안의 보배인 암소 뚝심이와 대화하면서 배 속의 새끼 성별을 가려낼 수 있는 것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모든 마법 같은 일들이 수남이에겐 일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든 전파상 텔레비전 앞에서 수남이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화면 속의 저 검은 들판··· 사막인가? 언덕인가? 아니, 달나라입니다!

 

하늘엔 휘영청 달이 있습니다. 땅에는 하얀 달맞이꽃이 한꺼번에 입을 엽니다. 세상은 낮보다 더 밝게 보입니다._본문 7쪽

 

 

1969년 그날, 우리에게 생긴 일

“여기는 지상, 다시 한번 응답하라, 삐리리리. 휴스턴, 여기는 아폴로 11호.”

1969년 7월 21일,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바로 그날입니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믿기 어려워하지만, 수남은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텔레비전 속에 펼쳐진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의 회색빛 표면 위에는 아름다운 달의 선녀 상아가 아닌, 풍선 같은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두둥실 서 있습니다.

“달나라 그거 별것도 아이네.”

이웃집 정동이가 말합니다. 하지만 수남이는 별것 아닐 리가 없는 달나라를, 수남이를 이끌어 주고 눈부신 일상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달나라를 아직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 수남이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별안간 달의 기운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배 속의 새끼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암소 뚝심이도, 늘 대화하던 숲속의 벌레들과 나무들도, 더 이상 수남이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시간이 멈춰집니다. 숲속의 모든 것이 창백해집니다. 수남의 귀에는 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_본문 53쪽

 

 

상아가 약속했던 꿈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게 읊조리는 문체로 전해지는 동화, 『달이 사라졌다』는 신비한 달의 기운으로 살아가던 산골 소녀 수남이가 인류의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이루어진 바로 그날 역설적이게도 달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수남이를 제외하곤 모두에게 기적이었던 일이 도리어 수남이의 마법을 앗아가 버린 것이지요. 어쩌면 작가는, 무궁무진한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는 꿈처럼 닿을 수 없는 장소였던 달에까지 닿을 수 있게 되었지만, 바로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꿈과 상상으로 가 닿을 수 있었던 환상의 세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미지의 세계, 상상과 꿈으로 가득했던 세계가 황량한 사막으로 눈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마치 산타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한 적 없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어린아이처럼 황망한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 주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약속을 잃어버린 듯이 말이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속에 물음표 하나를 남깁니다. 남들보다 더 빠른 도약, 더 높은 성장과 발전, 어제보다 더 멋진 가능성만을 꿈꾸며 달려온 현대사회에 “우리가 지금 향해 가고 있는 장소가 과연 우리가 어제까지 품었던 꿈의 세계보다 더 나은 곳인가”하는 질문을 말이지요. 하늘 위를 올려다보는 수남이의 빛나는 눈동자가, 오늘도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가던 우리의 발끝에 하이얀 달조각처럼 빛나는 쉼표 하나를 걸어놓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곳은 우리가 수천 년 세월 상상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어 오고 품어 온 바로 그 세계보다 더 나은 곳인가요?”

 

달의 정령과 대화했던 수남이지 않습니까. 모든 자연과 대화했던 수남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달의 정령은 사라져 버렸습니다._본문 69쪽

 

 

신성을 띤 여성성,

그 안에 내재한 인간성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주체로서의 여성입니다.

“니는 좋겠다. 사람은 계집애 낳으면 초상집인데 소는 계집애 낳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그쟈?”

임신한 암소 뚝심이는 수남이네 집에서 애지중지 아낌받는 보배입니다. 하지만 수남이의 이름은 지킬 수에 사내 남, 아들을 못 낳은 수남 어머니의 뼈아픈 사연이 깃든 이름입니다. 수남이가 사는 시대, 수남이가 사는 마을은 여전히 여자라면 제사상도 못 차리게 하고, 자식으로는 사내아이가 으뜸이라는 인식이 뿌리깊은 곳이지만 수남이의 아버지는 열 아들보다 야무진 수남이 하나가 백 배 천 배는 낫다며 수남이를 ‘우리 집 기둥뿌리’로 여깁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부장이 아닌 여자아이를 집안의 기둥으로 우뚝 서게 하는 서사는 더 나아가 암소 뚝심이와도 연결됩니다. 이야기 후반부에 새 생명을 낳는 뚝심이의 이야기는 곧, 죽어가는 것들을 되살리고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수남이의 능력과도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여자라서’ 안 되는 것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던 시대에 수남이는 오로지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기적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로써 수남이가 주변에 이루어내는 세계는, 성별과는 관계없이 그저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나아가야 하는, 나아갈 수 있는 이상향입니다. 수남이가 마음속에 ‘달에 사는 선녀 상아’를 이상향으로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수남이 글씨 한번 보이소. 얼마나 힘이 있심미꺼? 어허, 명필이다, 명필.”_본문 83쪽

 

 

달의 뒷면을 향해 걸어가는 마음

한편, 『달이 사라졌다』는 가상의 시공간에서 전투기 추락으로 냇가에서 놀던 다수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과 인류가 달에 착륙한 역사적인 실제 사건을 병렬시켰습니다. 지구의 어느 한쪽에선 눈부신 과학의 발전을 이루며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와중에 어느 한쪽에선 무고한 생명들이 개인의 삶과는 무관한 정치적인 이유로 목숨을 잃어 가고 있는 모순적인 현실은 지금 이 순간도 그리 낯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대의 혼란과 세계의 상실 앞에서도, 역시 지구의 어느 한쪽에선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후반부, 수남이는 달 소식에 정신이 팔려 임신한 암소 뚝심이를 제대로 돌보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갓 태어난 뚝심이의 새끼뿐 아니라 뚝심이까지도 잃어버릴 뻔한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내내 못난 주정뱅이인 줄만 알았던 이장 아재의 활약과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한 몸처럼 움직인 마을 공동체의 도움으로 뚝심이는 다시 살아나고, 뚝심이의 새끼도 무사히 구조됩니다. 인물과 사건을 어느 한 면에만 치우치지 않고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야기 전반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우리의 옛날과 전통에 대한 노스탤지어뿐만 아니라 내일을 향한, 죽음 너머의 새 생명을 향한 우리의 의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결코 다 알 수 없는 달의 뒷면을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하~타~메에, 오늘 달맞이꽃이 최고로 활짝 열렸네에.”_본문 77쪽

 

 

우리가 끝내 잃어버릴 수 없는 한 가지,

꿈을 꾸는 능력

전작 『모든 것이 다 있다』를 통해 독특하고 기이한 미래 세계를 보여 준 김전한 작가가, 갓 지은 밥 냄새가 폴폴 풍기는 옛날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그 옛날 무성 영화 시대 변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정겨운 문체는, 전작 『순례 씨』를 통해 우리를 먹이고 살려 온 주름진 손길에 존경을 바친 채소 작가의 그림을 만나 환한 공명을 이룹니다. 그 공명으로 노래되는 달의 소녀 수남이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속에서 오래 전 그 마력을 잃어버린 자연물의 힘을 되새겨 줍니다. 수남이 아버지를 시인으로 만드는 여름비처럼, 달의 기운 흠뻑 받아 입 벌리는 환한 달맞이꽃처럼 말이지요. 눈부신 은사시나무숲과 하이얀 개망초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름달처럼 깊은 송아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의 내일을 더 아름답게 할지, 혹은 불가능해 보였던 미지의 먼 우주에 내디딘 ‘위대한’ 첫 걸음이야말로 인류에게 더 나은 내일을 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른 달 아래 동그마니 서서 수남이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 우리는 어렴풋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핀 아름다운 꿈밭을 내일도지지 않고 가꾸어 나가는 일,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서 다치고 쓰러져 가는 당신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진짜 달나라보다 더 진짜 같은 꿈을 우리의 품에 안겨 줄 위대한 성취라는 것을요.

 

수남은 다시 달립니다. 은사시나무 숲길에도 달빛이 내립니다. 달빛을 받은 도라지꽃들이 밤바람에 춤춥니다._본문 69쪽

 

 

작가 소개

글 김전한

영화진흥위원회에 시나리오가, 문화일보에 시가 당선돼 시나리오 작가와 시인 ‘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영화도 만들고 글도 쓰는 문필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궁리하느라 일상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강좌라는 이름으로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전파 활동도 합니다. 전생에 전기수였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모든 것이 다 있다』가 있습니다.

 

그림 채소

웃는 게 매력적입니다. 순박하고 꽤나 성실해요. 감자를 즐겨 먹고 푸르른 곳들을 찾아다닙니다. 오래도록 곁에 머무르는 것들이 마음에 담깁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순례 씨』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