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싸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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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양이든 어떤 색깔이든 상관없어
나도 똥을 싸고 싶어
쌓이기만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찬란한 똥들을 기다리며
똥 못 싸는 병
끙 끄응, 끙 끄으응, 휴우… 안 나온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 속에 동글동글 똥 탑이 쌓여 가는데 입구를 누가 꽈악 묶어 둔 것만 같다. 아래위로 스멀스멀 똥 기운이 새어 나와 꺼억 트림도 하고 뿌웅 방귀도 뀐다. 똥은 죽어도 안 나온다. 아무래도 똥 못 싸는 병에 걸린 것 같다. 바람결에 날아온 풀벌레도 손 안에서 보란 듯이 똥을 싼다. 나만 빼고 모두들 똥을 잘 싸는 것 같다. 똥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는 걸까? 나도 똥을 싸고 싶다. 어떤 색깔이든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다. 풍덩! 시원하게 나만의 똥을 만나고 싶다.
쌓기만 하느라
싸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
언제부터였을까. 버리고 싸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가지고 쌓는 즐거움은 끝도 없이 추앙을 받지만 비우고 내보내는 기쁨은 뒷전이 되었다. 더 좋고 더 훌륭한 것을 가지지 못하면 편히 싸기도 어렵다. 제대로 가진 것도 없이 뭘 자꾸 비우려고 하느냐 핀잔을 듣는다. 싸지도 못하면서 쌓기만 한다. 꺼내지도 못할 것들을 넣기만 한다. 더 배우고 더 준비하고 더 노력하고 더 가지기 위해서 온통 집중하느라 몸이 얼마나 무거워졌는지도 모른 채 달려만 가고 있다. 하지만 잘 싸 보면 안다. 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머리와 마음 안에 자유로운 바람이 통하고 한없이 가벼워진 몸으로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을. 쌓은 뒤에는 싸는 것이 순리이고 본능이다. 쌓기만 하고 싸지를 못하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긴다. 망설이는 사이에 싸는 법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잘 싸야 잘 쌓을 수 있다.
똥은 세상을 빨아들이고 소화시킨
나만의 창조물
똥은 내가 보고 듣고 먹은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얻은 결과물이다. 세상에 널린 수많은 다양함 중 내 안목으로 선택한 것들이 내 손과 입과 심장과 머리를 거쳐 전혀 다른 조합의 새로움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똥은 가장 나를 닮은 창조물이자 남들의 이목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든, 예술을 하는 사람이든, 일을 하는 사람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라도 똥을 만들며 살아간다. 내 똥은 내 시간이고 성장이며 내 기질이자 노력이기에 결국 나 자신의 닮은꼴이다. 세상의 모든 똥은 정직하고 애틋하며 찬란하다. 우리는 우리 똥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아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완벽한 똥이란 없어
그저 즐겁게 똥을 싸면 돼
“누구나 똥을 싸는 것처럼 창작의 본능을 갖고 태어납니다. 하루빨리 내 똥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조급함도 있고, 기왕이면 엄청나게 커다란 똥을 싸고 싶기도 해요. 생각한 것보다 너무 작은 똥이 나올까 봐 겁도 나고, 내 똥이 아무것도 아닐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똥의 본능을 참고 사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세상에 내놓기 전에는 스스로도 똥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내 똥을 대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추고 싶은 나만의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을 수도 있고, 상상하던 모습과 딴판일 수도 있다. 두려움은 실행을 유예시킨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더 다듬고 채워야 보여줄 수 있다고 문 앞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그러다 영영 문을 못 열 수도 있다. 완벽한 똥이란 없다. 똥에 완벽함이 필요할 리가 없다. 똥이 쌓였다면 시원하게, 자신 있게 똥을 싸야 한다. 똥을 싸고 싶은 본능을 해소하고, 똥을 싸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이 책은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말하는 똥’ 시리즈의 첫 편이다. 창작의 고통, 표현의 고뇌, 결과에 대한 두려움, 자기 검열의 큰 벽을 변비처럼 달고 사는 모든 이에게 똥 싸는 즐거움, 똥 싸는 방법, 똥에 숨겨진 놀라운 가능성을 세 권의 연작으로 들려준다.
작가 소개
순이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오래오래 이야기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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