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글 | 이영아 | |||||
그림 | 이소영 | |||||
발행일 | 2025-01-06 | |||||
ISBN | 9791193138618(73810) | |||||
형태 | 무선 190x247mm 60쪽 | |||||
정가 | ₩1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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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창작동화 17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한겨울을 맞이하는 작은 방 한 칸
아빠, 우리의 다음 겨울은
더 따뜻할 수 있을까
겨울을 나는 집
교회 건물 3층으로 이사를 왔다. 원래는 복도였던 곳에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해 마련한 방. 수도나 화장실도 없이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생긴 방. 겨울엔 입김이 나도록 몹시 썰렁한 방… 아빠와 내가 단둘이 사는 곳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진 집도, 아빠의 일자리도, 엄마도 있었다. 평생 짜장면 만드는 일을 해 온 아빠가 가게를 차렸다가 망해 버리기 전까진 말이다.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은행, 빌린 돈, 권리금이란 게 대체 뭐기에 우리 집이 없어지고 엄마도 떠나 버린 건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으면 가슴이 시리고 자꾸 눈물이 난다.
오늘도 이 겨울을 나야 한다.
언제부터 아빠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이사를 자주 다닐 때부터인지, 엄마와 헤어질 때부터인지._본문 6쪽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마주하는 한겨울
엄마가 떠난 빈자리를 가슴에 안고 간이로 마련된 작은 방 한 칸에서 아빠와 함께 겨울을 나는 태수의 나날을 담아낸 이야기, 『겨울나기』. 뼛속까지, 가슴속까지 에이는 겨울을 나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태수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그 감각을 전달받으며 우리는 태수와 함께 겨울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어스름한 새벽부터 부지런히 집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 늦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와 창 너머로 잠잠히 바라보던 이웃집 불빛들. 엄마를 만나러 가던 길에 본 스쳐 지나던 사람들과 마을풍경···. 책의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 우리는 태수가 바라보던 거리 위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한겨울을 감내하는 중인 열세 살짜리 소년이 됩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집집마다 켜진 불빛이 따뜻해 보였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_본문 35쪽
맨몸으로 겨울을 난다는 것
태수의 겨울나기가 우리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잊어버린 겨울이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겨울은 여름도, 봄도 아닌 겨울. 방 안을 뜨끈하게 데우는 보일러와 몸을 따뜻하게 덮어 주는 외투가 없다면 어디든 예외 없이 매서운 한기가 속속들이 들어차 누구든 예외 없이 덜덜 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계절. 한 계절이 그토록 맨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마음 붙이지 못한 공부방에서 구구단을 외우고, 남몰래 낯선 동네로 찾아가 속절없이 엄마를 기다리고, 결국은 오지 않는 엄마보다 작은 스케치북의 새하얀 도화지 한 장에 더 커다란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태수의 하루 속에서 우리는 함께 기억합니다.
그러고도 괜찮을 수 있을까? 공부방에도 가기 싫고, 만날 친구도 없는데……. 어쩌다 친구가 생기면 이사를 갔다. 어느 때부터인가 혼자 놀았다. 학교에서도 혼자였지만 집에서도 혼자였다. 눈물이 또 나왔다._본문 47쪽
계절의 그늘진 자리로 우리를 이끄는
담백한 목소리와 진실한 시선
『겨울나기』는 전작 『편의점』, 『그 형』을 통해 담담한 문체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 온 이영아 작가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영아 작가의 동화들이 매번 이토록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양지바른 곳보다는 그늘진 곳에 자리하는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들여다보고 전하고자 힘쓰는 한 사람이 써 내려간 진실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영아 작가의 겨울 동화는 전작 『편의점』에 이어 다시 한번 콜라보를 이룬 이소영 작가의 그림을 만나 더 짙은 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보여지는 것 너머에 내재한 인물의 결핍까지도 오롯이 담아내는 이소영 작가의 그림 안에서 우리는 다만 관찰하는 이가 아니라, 함께 이 겨울을 나는 이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길고 더딘 시간일지라도, 담담히 견디고 나아가 우리는 끝내 맞이하게 되겠지요. 태수 아빠가 곧 다시 가지게 될 새 이처럼,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어야 할 희망처럼 오롯한 새 계절을요. 그 안에서는 우리, 부디 맨몸과 마음으로도 누구에게든 어김없이,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어서 내일이 오면 좋겠다. 물감을 사고, 붓을 사고…… 그림을 그리자. 엄마가 없어도 완벽할 때까지._본문 58쪽
작가 소개
글 이영아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가끔씩 빵을 구우며 살고 있습니다. 글 쓰는 일은 새로운 빵을 구울 때보다 더 가슴이 뜁니다. 어릴 때부터 바라던 꿈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생명력 있게 살아남는 동화를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201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고, 대학원에서 동화를 공부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편의점』, 『그 형』이 있습니다.
그림 이소영
한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입니다. 쓰고 그린 작품으로 『여름,』, 『괜찮아, 나의 두꺼비야』, 『안녕, 나의 루루』, 『힘내, 두더지야』, 『자, 맡겨 주세요!』 등 다수가 있으며, 2014년 ‘올해의 볼로냐 일러스트레이터’, 2021년 ‘화이트 레이븐스’, 2021년 ‘Prix Millepages’, 2023년 ‘Prix Livrentête’, 2024년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 등에 여러 작품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외 『편의점』, 『움직이는 생각 1권-잃어버린 거울』, 『이제, 날아오르자』, 『다랑쉬굴 아이』, 『이야기 귀신의 복수』 등 여러 동화책과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 주변의 삶과 삶 속에서 느끼는 마음과 관계, 정체성, 결핍 등을 그림책에 담아내려고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