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이재경
놀다 보면

By 2025년 01월 09일작가 인터뷰

『놀다 보면』 고무신, 이재경 작가 인터뷰

내일을 준비하면서 지금 노는 것이 아니라,

지금 놀다 보면 쌓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내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표지 이미지>

 

놀다 보면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고무신)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과 고래뱃속의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그리고 잘 버텨 낸 시간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2014년 처음 기획하고 드디어 세상으로 나오다니 한마디로 감개무량입니다. 고민과 협의와 수정과 또 수정의 시간을 거치면서 안절부절못하던 마음도 함께 살아납니다. 이재경 작가님께 뜨거운 감사를 보냅니다. 복잡하고 어색한 몇 마디 말을 이렇게 풀어내 주시다니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재경) ‘영영 안 나오는 건 아닌가?’ 머릿속에서 지워갈 때쯤 출간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얼떨떨하고 ‘아냐! 사실일 리 없어’ 그런 마음이었어요.

 

놀다 보면의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무신) ‘놀이는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관념적 연구자의 틀을 벗어나 ‘놀이가 실제 생활에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할까?’라는 실천의 영역으로 옮겨 가면서 문득 든 질문이 ‘놀다 보면’입니다. 어른의 입장이 아니라 노는 아이들의 호흡과 감각을 좇으며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놀고 있는 나는 어린 시절 어떻게 놀았을까’를 떠올렸고 제 안의 어린이와 놀이성을 더듬으며 20여 년 가까이 노는 현장 한가운데 있었던 저의 놀이관을 한 단락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10년은 이 약속을 지키며 놀아 낸 시간이었습니다.

 

<고무신 작가 놀이 현장 사진>

 

놀다 보면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재경) 원고를 처음 접했을 때 ‘놀다 보면’이라는 제목 때문에 ‘내 맘대로 하면 되겠구나’, ‘그냥 즐겁게 그리면 되겠지’ 하는 나이브한 생각이었는데 ‘혼자 노는 게 재미있는 건 아니구나’, ‘함께 놀아야 더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 과정이었어요.

 

<초기 채색>

 

놀다 보면을 작업하시는 데에 영향을 받은 경험이나 작품, 자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무신)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말놀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그림책으로 나온 『시리동동 거미동동』도 있고요. ‘놀다 보면’이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졌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경험담을 줄줄이 내어놓았습니다. 현장에서 같이 놀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저는 그저 모았을 뿐입니다.

(이재경) 우리나라와 여러 나라의 놀이 자료를 참고했고, 어릴 적 놀이도 떠올려 가면서 작업했어요.

 

<초기 채색>

 

놀다 보면속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고무신) 가장 가운데 페이지의 “그래서 놀다 보면 또 놀고 싶어요!” 장면입니다. 넓은 화면 가운데에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많이 하는 거꾸로 오르기 놀이입니다. 거꾸로 올라가는 아이에게서 저를 발견했습니다. 또 수많은 놀이로 채워진 그 장면 속에서 각자 저마다의 자유로움을 찾아 노는 장면이 참 좋습니다. 이 책에는 약 150가지의 놀이가 숨겨져 있어요. 더 많이 찾을 수도 있지요. 책을 볼 때 돋보기를 활용하면 이재경 작가님이 구석구석에 숨겨 놓은 놀이를 찾는 재미도 있어요.

그리고 이 안에는 제 주변의 친구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이재경 작가님께 알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쿠브(※Kubb, 나무 지휘봉을 던져 나무 블록을 쓰러뜨리는 잔디밭 게임)하는 고ㅇㅇ, 체스하는 임ㅇㅇ, 커피 내리는 조ㅇㅇ, 휠체어 타고 나비 잡는 우진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잠수하는 박ㅇㅇ, 그림 그리는 이ㅇㅇ, 작곡하는 노ㅇㅇ, 연극하는 양ㅇㅇ, 뜨개질하는 강ㅇㅇ, 노래하고 춤추는 놀룩, 패러글라이딩하는 장ㅇㅇ, 현대 무용하는 최ㅇㅇ…… 신기할 따름이어요. 사실 이재경 작가님과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답니다.

 

놀다 보면의 그림에는 수많은 인물이 각양각색의 놀이를 하고 있는데요, 그중 특별히 좋아하는 인물이나 놀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이재경) 어릴 적 겨울이 되면 언니, 남동생과 스케이트를 자주 탔어요. 자유자재로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는 언니나 남동생과는 달리 자꾸 엉덩방아를 찧어서 속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 스케이트 잘 타는 사람을 좋아해요.

 

<초기 채색>

 

작가님께서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셨거나, 지금 가장 좋아하시는 놀이는 무엇인가요?

(고무신) 좋아했던 놀이라기보다는 잘하고 싶었던 놀이가 있습니다. 비사치기인데요.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 뽐내고 싶은데 생각만큼 몸이 안 따라 주었지요. 그래서 집 앞 골목에서 혼자서 비사치기를 연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이기고 싶은 마음, 뽐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연습으로 몸을 익숙하게 만들었지요.

(이재경) 놀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거의 9년간 발레에 푹 빠져있어요. 어렸을 때는 오징어상(오징어 게임), 공기놀이,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같은 놀이를 해가 질 때까지, 해가 져서도 볼이 빨개지도록 놀곤 했어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놀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무신) 요즘 아이들과는 ‘균형’과 ‘우연’, ’불확실성’을 주제로 놀이를 만들고 놀잇감을 개발하여 함께 놉니다. 사다리 오르기, 높은 곳에 올라가기, 징검다리 건너기, 맘대로 움직이는 오뚝이로 알까기 하기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자기를 놓아 보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놀이가 아니라 감각하는 놀이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참고 이미지: 징검다리 이은아>

 

특히 그리기 어려운 놀이가 있었다면, 어떤 놀이였나요?

(이재경) 주제는 ‘놀다 보면’이지만 특정한 놀이 하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놀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려야 하다 보니 상황과 놀이의 합이 중요했어요. “튼튼해져요/힘이 세져요/시간 가는 줄 몰라요/다칠 수 있어요/주변을 잘 살펴야 해요” 등등 추상적인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게 쉽지 않았어요.

 

<초기 채색>

 

작가 소개 중, 놀이로 시간과 공간과 사건을 잇는 놀이 노동자라는 부분이 인상적인데요, 어떻게 놀이 노동자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무신) 민속학을 공부하면서 전래 어린이 놀이를 연구하고, 수년간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놀이가 ‘밥줄’이었습니다. 지금도 놀이가 여전히 저의 밥줄입니다. 놀아야 먹고사는 일을 하고 있지요. 놀이를 노동으로 한다는 것이 사실 편치만은 않은 일입니다. 놀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로움이 더해집니다. 모든 노동이 다 그렇기는 하지요. 놀이는 관계를 알아가는 삶의 태도입니다. 나와 나의 관계, 나와 너의 관계, 나와 자연의 관계, 나와 미래의 관계 등 많은 불확정의 세계에서 ‘나’를 찾고, 세우고, 펼치는 연습이 놀이이기 때문에 여러 방면의 연구와 실험과 실패가 동반됩니다. 스스로 만족해하며 내놓는 놀이가 현장에서 노는 이들에게 외면받을 때는 슬프고 괴롭고 외롭지요. 내가 만든 놀이와 놀잇감과 놀이터를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고무신 작가 놀이 현장 사진>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이재경) 초기에는 수채화를 사용했지만, 더 깔끔하고 명확한 이미지를 위해 색연필로만 작업했어요.

 

작가님께 놀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고무신) 처음 놀이를 일로 할 때는 현장의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웃음 넘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다면 요즘은 놀이하는 감각에 대한 궁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내는 주체의 준비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저는 당연히 그것이 ‘놀이’라고 강조하면서 생각에 살을 보태고 논리를 만들고 그에 실제 상황을 연결하고 있어요. 놀이는 ‘하고 싶음’이고 저절로 몰입하는 순간의 힘이고 내 것을 만드는 연습이라고 강조하면서요. 무엇보다 근육에 힘을 주어 나를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이니까요. 아는 것(앎)이 하는 것(함)이 될 때 ‘삶’이 되잖아요. 놀이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개인의 감각적 서사라고 생각합니다.

 

<고무신 작가의 놀다 보면도표>

 

작업 중 있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이재경) 저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는 편이라서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리는 걸 겁내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데 이번엔 좀 힘들었어요.

 

놀다 보면을 읽으면 우리의 일도 하나의 놀이로 바라보고 즐겨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데요, 거꾸로 놀이를 업으로 삼아 놀이 노동자로서 살아가시는 건 어떨지 궁금합니다.

(고무신)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필요한 말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억압하는 말이기도 한 것 같아요. 노는 것을 일로 한다는 것은 절박함이고 간절함이고 긴장의 연속이지요. 그런데 그때라야 설레고 기쁘고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놀이를 일로 하게 되면 순간의 즐거움과 내일의 희망까지 다 느낀답니다.

 

<고무신 작가 놀이 현장 사진>

 

놀다 보면원고를 만나기 전과 후, ‘놀이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이재경) 놀이에는 남녀노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세대가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말은 아이들과 같이 논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놀다 보면은 아이와 어른, 두 시점의 이야기가 한 권으로 묶여 있는데요, 이러한 구성을 구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무신) 어린이는 놀면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놀면서 어린이가 됩니다. 아이도 언젠가는 어른이 될 터이고 어른도 언제는 어린이였죠. 그래서 둘은 다름이 아니고 같음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오래전 80세 된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고무줄뛰기를 하는데 “옛날에는 잘했는데 지금도 할 수 있을까?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그러시더니 한 발을 고무줄에 거는 순간 누구보다도 멋지게 한 판을 잘 노셨습니다. “잘하시네요. 못하신다더니.” 그러자 하시는 말씀이 “내가 했나, 몸이 했지.” 하시는 거예요. 순식간에 60~70년을 훌쩍 뛰어넘으신거죠. 놀이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모두 필요한 ‘지금의 무언가’입니다.

 

<참고 이미지: 줄넘기 이은아>

 

이야기의 고유한 분위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재경) 『놀다 보면』을 그리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인물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는 거였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옷이 어울릴까?’ 하는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초기 채색>

 

놀다 보면을 통해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가요?

(고무신) “놀면 된다. 놀아도 된다. 놀아야 된다.” 등 선언의 내용이 아니라, 놀다 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각자의 그 무엇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내일을 준비하면서 지금 노는 것이 아니라, 지금 놀다 보면 쌓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내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초기 채색>

 

다음으로 새롭게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무신) 가칭 ‘놀이의 우주’라는 제목으로 놀이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던져 보려 합니다. 시인 네루다의 『질문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놀이에 관한 답이 없는 질문들을 쌓아 보았습니다. 말이 안 되는 질문에 이야기가 쌓여있는 365가지의 놀이를 그림으로 담고 싶어요.

(이재경) 4절을 꽉 채운 그림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을 새롭게 쪼개고 분할해서 그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그림책을 구상 중이에요.

 

나에게 책 놀다 보면(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고무신) ‘한겨울 김칫독에서 막 꺼내 먹는 동치미 국물’이다. 시원하고 칼칼하고 개운한 동치미 국물 한 사발 들이키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지요.

(이재경) ‘미워도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놀다 보면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무신) 책을 보다가 울끈불끈 무언가 하고 ‘하고 싶음’이 생기면 책을 덮고 바로 움직여요. 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다 놀이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딴짓’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아실 거예요.

(이재경) 『놀다 보면』을 작업하면서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신남, 재미, 어려움을 지나 결국에는 즐거움으로 마무리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에게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즐거움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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