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상상』 박광명 작가 인터뷰
어려운 시간이 마법처럼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찰나의 시원함이 우리를 잠시 쉬게 하고
그 에너지로 다시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표지 이미지>
『여름 상상』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여름 상상』 작업을 여름 시즌에 맞춰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기쁩니다.
『여름 상상』은 에너지 고갈 문제가 현실이 된 미래의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야기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
어릴 적 불볕더위를 헤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느껴졌던 청량감,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봉투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던 추억이 여름 상상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여름 상상』이 환경 문제를 대변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고 앞부분에서 후끈 달궈진 더운 날씨가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냉방기 사용이 어렵다는 설정을 넣고 싶었습니다.
<초기 스케치>
<초기 디지털 작업>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이야기를 구상하실 때 가장 염두에 두신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고 덮었을 때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느껴졌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마치 한여름의 꿈처럼, 주인공 아이는 한바탕 시원한 여름 상상을 통해 불바다 같은 도시 한복판에서 새파란 남극의 추위 속으로 던져집니다. 이런 마법 같은 반전의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더운 날에 선풍기를 켜면 바람이 씽씽 부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풍기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그 순간 즐거운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떨까하며 『여름 상상』을 상상했습니다.
책 속에서 남극에 도착한 주인공 아이는 수많은 펭귄 친구들을 만나 서로의 온기와 마음을 나누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갑니다. 작가님이 『여름 상상』에 담고 싶었던 ‘우정’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작가님의 소중한 우정 이야기가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어릴 적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 같이 술래잡기도 하고 잡기 놀이도 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죠. 친구 집에 가서 라면까지 끓여 먹으면 단짝 친구가 된 거 아닐까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름이가(책에서 이름이 나온 적은 없지만) 차가운 공기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곳을 즐겁게 추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펭귄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의미 있게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초기 디지털 작업>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불바다처럼 고통스러운 열기와 얼음 땅의 차디찬 냉기를 오가며 경험합니다. 작가님의 일상 속에서, 견디기 힘들만치 뜨거운 열기와 속까지 시원해지는 차가운 바람 한 줄기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저도 보통의 현대인처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갑니다. 아이를 양육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퇴근 후에는 귀가 후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합니다. 아이를 재우고 그제서야 갖는 온전한 저만의 시간이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꿀꺽하면 그제서야 분주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아요.
남극 여행을 마친 주인공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봉투 풍선에 구멍이 납니다. 그 속을 채웠던 남극의 바람이 이글이글 타오르던 세상에 쏟아져 내리면서, 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난데없는 한겨울의 선물이 되어 주지요. 이 결말을 통해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작업을 하면서 저도 참 뜨거운 여름 속에 있었습니다. 무거운 작업 가방을 짊어지고 오전은 작업실로 오후엔 집으로 옮기면서 생활했고 작업 말미에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목표치 양의 작업을 끝내고 쉴 때 안도감과 쾌감을 느끼기도 했죠. 우리는 그런 시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뜨겁고 답답한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간이 마법처럼 해소될 수는 없겠지만 찰나의 시원함이 우리를 잠시 쉬게 하고 그 에너지로 다시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름 상상』 후반부에 지친 사람들이 바람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중 어딘가에 우리 모습이 있겠죠.
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마음의 뜨거움을 잠시 식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초기 디지털 작업>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펭귄들이 라면 먹으며 쉬는 장면도 좋고 봉투 풍선이 노을 속에서 붕 떠오른 장면도 좋습니다. 그래도 제가 책을 보며 오랫동안 머무는 곳은 봉투 풍선이 터지고 사람들에게 바람이 나눠지는 장면인 듯 싶습니다. 그 장면 앞에서는 저 또한 찌뿌린 마음이 좀 바람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느껴지거든요.
<채색 과정>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만화적인 요소들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싶어 만화 컷을 사용했는데 컷과 컷 사이에서 공백이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느끼실지 좀 걱정됩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재료의 선택은 사실 제 상황에 맞춰 가장 편하면서도 효과적인 재료를 선택하는 것 같아요. 이번엔 제가 좋아하는 왁스크레용을 사용했습니다. 발색이 선명해 여름의 통통 튀는 느낌과도 어울리고, 종이 위에서 섞는 것도 가능해 드라마틱한 회화적인 느낌도 줄 수 있는 재료라 앞으로도 자주 사용할 것 같습니다.
<채색 과정>
『여름 상상』은 작가님의 3번째 창작그림책입니다. 꾸준히 그림책 작업을 이어오신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일까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성장’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림책은 제게 성장할 수 있는 ‘시련’과 ‘성취’, 그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해 주는 영역인 듯 싶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솔직한 저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계기도 주는 것 같아요. 아직 저 스스로는 부족함을 느끼며 작업하고 있지만 한걸음 한걸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지키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가을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가을 상상도 독자 분들께 다른 의미의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한색과 난색으로 서로 다르게 표현된 마지막 장면>
작업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저희 집 개가 제게 놀아달라고 계속 진지한 눈빛을 쏘고 있어서 그 눈빛을 무시하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주 귀여운 방해꾼인 셈이죠. 그래도 고독한 작업 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제게 무한 사랑을 주는 수묵이에게,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웠다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작업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