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똥 싸고 싶어

By 2021년 09월 23일작가 인터뷰

<똥 싸고 싶어> 순이 작가 인터뷰

세상으로부터 얻는 것들은 하염없이 쌓여 가는데
제대로 쏟아 내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그게 꼭 변비에 걸린 것 같았어요.

< 표지 이미지 >

 

 

『똥 싸고 싶어』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쁘고 매우 감사합니다. 겨우 똥 하나 싸게 되었네요. 하하하.

 

 

똥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어떤 고질병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얻는 것들은 하염없이 쌓여 가는데 제대로 쏟아 내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그게 꼭 변비에 걸린 것 같았어요. 나의 어떤 요인이 창작의 과정을 방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똥을 제대로 싸지 못하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출판사에 보낸 기획 의도였습니다. 주인공이 바로 저였죠.>

 

 

여러 가지 똥 이야기들이 있고, 똥을 소재로 한 그림책도 많지만 이 책의 똥이 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아는 그림책 속의 똥은 똥의 고정된 속성에 재미를 부여한 것이 많았습니다. 거름, 냄새, 더러움 등 말이죠. 이 책의 똥은 ‘창작의 결과물’을 의미한다는 것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똥과 창작물을 연결 지으면서 똥 이야기가 새롭게 확장되었습니다.>

 

 

심플한 선으로 얼핏 단순하게 그려진 것 같지만 섬세하고 미묘한 표정과 감정이 잘 드러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캐릭터 모습은 어떻게 잡게 되셨나요?
섬세하고 미묘한 둘째 딸의 도움으로 표지 속 주인공이 완성되었습니다. 하하하.
『똥 싸고 싶어』의 기획 중 전체 이야기와 다른 주인공인 똥 캐릭터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지만 이야기를 끌어갈 캐릭터의 모습은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둘째 딸이 제 옆에서 똥 싸는 사람을 무심히 그려 주었습니다. 즉시 딸과 캐릭터의 지분에 대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사용 허락을 받은 후 표지 캐릭터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에게 저작권이 있는 똥 싸는 사람 캐릭터입니다.>

 

 

똥을 못 싸는 온갖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데요, 특히 장이 묶여 있는 장면이나 애벌레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직접 겪은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하신 걸까요?
후훗, 장이 묶여 있는 장면은 저의 창작 변비 상황을 좀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고요. 애벌레 장면은 저희 집 창문에 매일 청개구리가 싸 놓은 똥을 보고 든 생각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렇게 쪼그만 개구리도 똥을 싼다고? 게다가 똥이 왜 이렇게 커?!’

 

<장이 묶여 있는 장면>

 

 

세상의 모든 똥 모양을 보여주는 듯이 다채로운 똥이 등장하는데요, 미처 책이 실리지 못한 똥 모양도 있나요? 이렇게 다양한 똥을 보여주신 의미도 궁금합니다.
무궁무진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솔직히 많지 않습니다, 하하. 저는 고작 한 장의 똥을 그리면서도 제 상상력의 한계를 실감했거든요….
다양하다는 것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그들의 창작물도 모두 다른 것 같아요. 이 점은 제가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을 흥미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초기에 구상했던 표지안>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장면이 있을까요?
「죽어도 안 나와」 장면인데요. 비석에 ‘똥 한 번 못 싸고 영원히 잠들다.’라는 문구를 넣을 때 묘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저의 궁극적인 두려움을 스스로 탁월하게 희화화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하.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똥이 인사하는 장면입니다. 창작자와 창작물의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어떻게 연출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일단 만났으니 인사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창작자와 창작물의 첫 대화입니다.>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작업 중의 일들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다만 제 방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다는 것 정도는 기억이 나네요. 똥은 혼자 싸고 싶었거든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특별한 재료나 효과는 없었지만 만화 기법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만화는 그림과 이야기, 캐릭터로 이루어진 예술인데 어쩜 세상에 그림책과 똑 닮았습니다. 제가 만화와 그림책을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똥 싸고 싶어』는 만화처럼 디지털로 작업했습니다.

 


<초기에 구상했던 그림들입니다.>

<디지털로 작업했지만 종이 그림으로 캐릭터들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그림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헌사에도 썼듯이 말이에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똥을 만난 마지막 부분에서 똥이 말을 겁니다. ‘말하는 똥’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을까요?
이 책의 다음 편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인가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결국 자신과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사실 어떻게 하면 똥을 쌀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어요. ‘말하는 똥’ 시리즈는 이미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방해물들을 하나씩 거둬 내는 이야기입니다. 창작의 본능을 되찾는 것이죠. 『똥 싸고 싶어』, 『똥 싸는 방법』,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세 권의 구성으로 첫 권이 나왔고 앞으로 두 권을 더 펴낼 예정입니다.

 


<『똥 싸고 싶어』는 ‘말하는 똥’ 시리즈의 첫 권입니다. 다음 권들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나에게 『똥 싸고 싶어』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똥 싸고 싶어』는 ‘내게 바치는 책’입니다.

 

 

독자들이 『똥 싸고 싶어』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창작은 특정한 누군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는 것을 창작을 하기 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저처럼 오랜 세월 본능을 억누르고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아 헤맸던 분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똥! 쌀 수 있습니다! 저도 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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