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 되고 싶어』 조은혜, 진경 작가 인터뷰
어른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고,
아이의 말이라고 다 틀린 게 아니에요.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좋은 어른’으로 가는 출발점 아닐까요?
『공룡이 되고 싶어』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조은혜) 제가 작업한 책 『본능을 찾아서』와 『공룡이 되고 싶어』가 거의 동시에 출간됐어요. 두 배로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고요. 마음에 기쁨의 한계치 같은 게 있어서, 그 한계치를 책 두 권이 반반씩 나눠 가져간 느낌이에요. 꼭 아이 둘을 키우면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니까 결론은, 기쁘다는 얘깁니다.
(진경) 기쁩니다! 기대도 되고 설레네요.
어엿한 공룡이 되고 싶은 아이와 의젓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엄마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입니다. 이런 주제에 주목하게 된 이유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조은혜)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논리적이에요. 왜 해야 하는지, 왜 해서는 안 되는지, 충분히 설명해 주면 의외로 쉽게 수긍하기도 하고요. 제 첫째 아이가 정말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아이였어요. 반복해서 설명해 주면 대개 엄마의 뜻을 따르지만 잠깐 물러날 뿐, 결국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요. 결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아이의 생각도 일리가 있어요. 꼭 누가 맞고 누가 틀리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이 다른 거죠. 어른과 아이의 입장 차이, 그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말라고 귀띔해 주고 싶었어요.
책의 내용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전체적인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진경) 조은혜 작가님께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는 아이가 어렸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실감 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요.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정말 현실을 담은 이야기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림 방향은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의 상상 장면, 현실 엄마의 상상 장면이 각각 다른 느낌이면서도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했습니다.
<초기 섬네일>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진경) 이야기 구조가 재미있어서 그림으로 더 표현할 부분이 많지는 않았어요. 대신 잔재미를 더하고 싶었어요. 아이의 공룡 장면들에 실제 상황에 대한 힌트를 숨겨 놨어요. 지하철 손잡이라든지 모래 놀이 도구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calm down”, “please” 같은 단어를 집 안 액자나 옷에 넣어 엄마와 아이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다양한 특성을 지닌 여러 공룡이 등장하는데요, 이야기 구성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은혜) 아이가 A 공룡이 되어 a 행동 개시 – 엄마가 a′의 이유를 들어 저지 – 아이가 a 행동을 하지 않는 B 공룡이 되어 b 행동 개시 – 엄마가 b′의 이유를 들어 저지 – 아이가 b 행동을 하지 않는 C 공룡이 되어 c 행동 개시. 이런 식으로 계속 같은 패턴이 반복되잖아요? 덕분에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풀렸어요. 단연코 가장 ‘꿀 빨았던’ 작업입니다.
인물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게 되셨나요?
(조은혜) 그냥 우리 집에 같이 사는 아이를 그대로 글 속에 옮겨 놨다고 보시면 돼요. 끊임없이 자신의 논리를 펼치며 시도하는 모습은 첫째 아이를 쏙 빼닮았고요, 마지막에 발을 빼고 능청스럽게 하트까지 날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둘째 아이입니다.
다양한 공룡들과 악동 같은 아이들, 그리고 엄마의 캐릭터가 강렬하게 살아 숨 쉬는데요, 인물들의 표현을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진경) 글 작가인 조은혜 작가님과 친한 사이예요. 육아의 고충을 나누는 사이기도 하죠. 지금 보니 책 속 엄마에겐 작가들의 모습이 녹아 있고 악동 같은 아이들과 공룡들에겐 집에 있는 아이들이 생생함을 더해 준 것 같습니다.
<초기 채색 샘플>
아이들은 실제로 본 적도 없는 공룡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공룡 책을 쓰시면서 알게 된 공룡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조은혜) 매력 없죠. 예나 지금이나 저에게 공룡은 매력이 없어요. 공룡 이름이나 공룡이 살았던 시대 같은 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아요. 제가 매료된 건 좋아하는 대상에 순수하게 흠뻑 빠져드는 아이의 모습이에요. 때로는 답답하지만 덮어 놓고 사랑스러운 아이 특유의 집요함 같은 것들이요.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조은혜) 아이가 마지막 ‘회심의 한마디’를 던지는 장면이요. 마지막 장면을 위해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을 고대하며 얼마나 신나게 달렸는지 몰라요.
(진경) 면지에 들어간 그림인데 엄마가 공룡이 된 모습입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조은혜) 없어요. 명절에 시댁으로 가던 차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얼개를 갖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적어 내려갔죠. 다 쓰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그림 작가님과 상의하며 바뀐 부분도 있지만, 처음의 이야기와 90퍼센트 유사합니다.
(진경)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쿵쿵 걷는 장면이요. 흔들리는 느낌 표현이 너무 어려웠어요.
<초기 채색>
마지막 장면에서 현이의 통쾌한 한마디가 시원합니다. 이런 결말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셨나요?
(조은혜) 현이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엄마, 뭔 소리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정도 될 거예요. 어른인 제가 늘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죠.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도대체 뭔 소리야. 저게 언제 정신을 차릴까.’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공룡이 뭔지도 모르고 ‘멋진 공룡’이 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엄마가, 아이 보기에는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어른들은 은연중에 아이의 의견을 얕잡아 볼 때가 많은데요, 어른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고, 아이의 말이라고 다 틀린 게 아니에요. 각자 자기의 주장을 할 뿐이죠.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좋은 어른’으로 가는 출발점 아닐까요?
누구나 한 번쯤은 공룡, 혹은 그 무엇이 되고 싶은 허황되지만 아름다운 꿈을 꿈 적이 있을 텐데요, 작가님들은 무엇이 되어 보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은혜) 미녀. 많이 어릴 땐 좀 예뻐 보고 싶었는데요, 자라면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되잖아요. 그다지 예쁜 편은 아니라는 걸요. 그렇다고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로 미모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진 않아서, 중간에 방향을 조금 바꿨어요. 인터넷 소설 여주. 특별한 남주의 구애를 받는 평범한 여주, 뭐 그런 걸 동경했던 것 같아요.
(진경) 예전엔 정말 공상을 많이 했는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럴 시간이 없네요. 대신 그렇게 대학생 시절이나 홀몸 시절의 꿈을 많이 꿔요. 깨고 나면 ‘좋았다… 하지만 허황되다(?).’라고 느낍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조은혜) 더 많은 어린이 독자들의 공감을 사는 거요. 이 책을 읽는 친구들이 주인공에 동화되길 바랐어요. 성별 구분 없이 많은 독자를 포용하기 위해 현이와 준이를 ‘남매’로 바꾸는 설정도 받아들였죠. 원래 현이와 준이는 ‘형제’라는 설정이었거든요. 저희 집 현이와 준이도 ‘형제’이고요. 덕분에 둘째 준이로부터 엄청난 원성을 샀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진경) 책이 나오고 아쉬움이 없기를 바랐어요. 책이 나오면 언제나 기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어요. 내가 아쉽다면 독자들도 아쉬울 테니 앞으로의 작업은 아쉬움이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진경) 아크릴 물감을 주로 쓰고 펜이나 사인펜도 섞어서 그렸습니다. 엄마의 바람 장면들은 색연필로 뽀송뽀송하게 그려 보고 싶었어요.
<초기 채색>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조은혜) 앞의 답변과 이어지는데요, 둘째가 그림을 보고선 울었어요. 왜 ‘준이’를 여자아이로 그렸냐고요. 이름이 자기랑 똑같아도 성별이 여자면 자기가 아니라면서요. 다음 책은 꼭 네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겠다고 약속해서 겨우 달랬죠.
(진경) 아이 낳기 전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자는 장면과 표지를 제외한 나머지 장면을 모두 끝냈었어요. 와! 책 나오겠다, 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한 장면과 표지를 그리는 데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나에게 『공룡이 되고 싶어』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조은혜) 연대기.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먼저, 두 여자의 ‘연대’기. 그림 작가님과 대학 동문이고, 원래 친한 사이예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전보다 훨씬 끈끈한 사이가 됐죠. 우리의 글과 그림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나왔으니 이보다 진한 연대가 있을까 싶네요. 두 번째로 성장의 ‘연대기’. 세 번째 출간이지만, 시간상으로는 가장 먼저 쓰인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완성하고 본격적으로 ‘쓰는 일’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책이 출간되기까지 3년 동안, 작가로서 중요한 순간들이 몇 번 지나갔어요. 장면 장면에 그 시간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독자들이 『공룡이 되고 싶어』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은혜)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엄마는 아이 부분을, 아이는 엄마 부분을 바꿔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상대의 말을 하며 상대가 되어 보는 거죠. 사실 어떻게 읽어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나게 썼고, 즐겁게 그렸으니까요.
(진경)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공감하며 즐겁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