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주르륵』 홍주연 작가 인터뷰
우리의 소중한 이들이 주르륵 녹아내리지 않도록
서로의 힘든 마음을 잘 살피고 토닥여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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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주르륵』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첫 책이 6월에 나오고(홍주연, 『어느 날 불쑥』, 여유당(2023)) 이렇게 빨리 두 번째 책이 주르륵 나오다니!! 너무 신기하고 기뻐서 주르륵 녹아 버릴 것 같습니다.
<초기 스케치>
『아빠가 주르륵』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을 하던 중에 온몸이 주르륵 녹아 버리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아빠가 물처럼 녹아 버렸다’는 발상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평소 남편이 욕조에서 목욕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들어가면 2시간은 기본입니다. 유독 피곤해 보이던 날, 욕조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너무 피곤해서 주르륵 녹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란 상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녹아 버린 아빠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가족은 똘똘 뭉쳐 여러 방법을 궁리합니다. 가족의 손길에 의해 아빠는 아이스크림처럼 꽁꽁 얼었다가, 꾸덕한 쿠키가 되어 보기도 하고, 마지막엔 말랑한 젤리로 변신하지요. 이 이야기 안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핵심 열쇠로 ‘젤리’란 소재를 꼽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전 더미북에서는 아빠를 얼려 보았다가 끓여도 보고, 쿠키로 반죽해 구웠다가 결국엔 쿠키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쿠키 아빠도 결국 부서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모습의 아빠와 노는 것이 재미있을까’ 고민하던 중 젤리의 물성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이가 좋아하며, 모양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고, 녹아 버린 아빠처럼 투명하고, 색도 다양하고, 달콤하면서 탱글탱글 녹거나 부서지지 않는 젤리!! 무엇보다 당시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젤리이기도 했습니다.
<초기 스케치>
어린아이처럼 작아진 젤리 아빠와 신나게 놀며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작가님께서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모든 어른의 마음속에는 아이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무거운 책임들을 내려놓고 걱정 없이 놀고 싶은 마음을 늘 품고 살고 있습니다.
젤리가 된 아빠를 보며 아이들이 말합니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아빠,) 우리 이제 같이 놀러 가요.”
어쩌면 이 말은 아빠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함께 잠들어 있는 가족의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포근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이 장면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나요?
사는 것 대부분이 길고 지루한 기다림과 반짝이는 몇몇 순간으로 채워진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책의 초반에는 아이들이 아빠를 기다립니다.
녹아 버린 아빠가 원래대로 돌아오기를요. 그런데, 아이들만 기다렸을까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아빠가 말합니다.
“있잖아… 아빠도 이렇게 달콤하고 따듯한 시간을 정말 오래 기다렸단다.”
사실은 아빠도,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다림’이라는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다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누군가(가족)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서로의 마음을 토닥이며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초기 채색>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족’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요?
며칠 전 4살 딸아이와 그림을 그리며 놀던 중에 제 그림을 본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색감 좋네~ 뭐야 색감 없다더니 있네! 있어.”
어른처럼 아는 체하는 말투가 웃겼지만, 평소 그림 작업을 하며 색감이 부족하다는 제 말을 듣고 기억해 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아이에게 또 응원받았구나…
마음이 따듯하게 채워졌습니다. 나의 어떤 모습도 믿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존재. 그게 가족의 힘이 아닐까요?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우리에게는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온종일 팽팽히 붙잡고 있던 긴장감이 탁! 하고 풀어지는 순간,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흐물흐물 풀어져 버릴 것 같은 노곤함이 찾아오지요. 이처럼 고단함에 녹아 버린 우리의 마음을 되돌려 줄 진정한 마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잘하고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괜찮은, 편안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속의 주인공 가족처럼, 하루의 고단함을 편안하게 풀어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충전할 수 있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저녁 무렵,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여유가 있을 때면 가족과 산책을 합니다. 사교적인 고양이와 인사도 하고,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고,
공기와 온도의 변화를 느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오면 마음 안이 퐁퐁하게 채워진 게 느껴집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마지막 장면입니다.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는 가족의 평온한 얼굴을 보면 ‘이 가족이 따뜻하고 달콤한, 반짝이는 순간을 만들었구나!’ 하는 것이 느껴져서 좋아합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주르륵 녹아 버린 아빠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충격과 재미를 모두 담아야 하고 녹아 버린 아빠의 형태와 질감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모든 작업을 아이패드를 사용해 디지털로 작업했습니다. 수채화와 색연필 느낌을 내려 많이 노력했습니다.
<초기 섬네일>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자’라는 말을 늘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제가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흙과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그 길을 걸으며 풀도 보고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제 그림책을 통해 풀도 보고 꽃도 보고 하늘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업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래는 아빠의 주조색이 ‘핑크’였습니다. 한창 수정 작업 중 『마법 젤리』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아빠가 주르륵』과 젤리라는 소재와 색이 겹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핑크, 보라색을 거쳐 시원한 초록 계열로 색을 바꾸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초록색 젤리에 굉장히 만족합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익숙하고 편안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장면에서 주인공 가족이 느끼는 감정선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초기 채색>
“나에게 『아빠가 주르륵』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기다림 끝에 맛보는 달콤한 젤리다.
독자들이 『아빠가 주르륵』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쁜 부모님과 함께 보낼 시간을 그저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의 지루하고 힘든 마음을 어른들이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처럼 걱정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엄마 아빠의 마음도 아이들이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또, 가족이 함께 책을 읽으며 녹아 버린 아빠를 어떻게 되돌릴지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책 속의 젤리 아빠가 귀엽고 재미있어 보인다고 현실의 아빠가 진짜 녹아내리면 큰일 나는 거 아시죠? 나도, 가족도, 친구도 소중한 이들이 녹아내리지 않도록 힘든 마음을 잘 살피고 토닥여 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